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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문서의 향기]

조선시대에도 영수증 주고 받아

기묘년 김자범이 받은 약값 영수증. ([email protected])

"현금영수증, 필요하셔요?"

 

요즘 물건을 사고 나서 자연스럽게 듣는 질문이다. 현금영수증 발급이 의무화되기 이전에는 영수증을 요구하려면 왠지 머쓱해지고는 했다. 얼마 되지 않은 값을 치르면서 꼬박꼬박 영수증을 챙기는 것은 좀스럽게 보이는 것 같아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요구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공정한 과세와 징수를 위해 5000원 이상의 금액을 거래할 때는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하도록 규제하고 여기에 소득공제 혜택까지 주자, 현금영수증 발급은 이제 일상생활이 되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척문(尺文)이라는 영수증을 주고 받았다. '척문(尺文)이라고 쓰고 이두(吏讀)로 '자문' 또는 '잣문'이라 읽는다. 오늘 살펴볼 고문서는 약값을 지불하고 받은 자문 곧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기묘년 12월 5일에 전라도 장수현 천천면 삼장동에 살고 있던 한씨(韓氏)의 사내종 차율(次栗)이 김자범(金子凡)의 약값[藥價]으로 3냥 6전을 주고 최씨에게서 받은 영수증이다. 한씨 집안의 사내종이 왜 김자범의 약값을 지불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차율은 약값을 지불했다는 영수증을 잊지 않고 챙겨가서 약과 함께 전달했을 것이다.

 

이렇게 일상적인 거래에서 영수증을 주고 받았던 것은 물론이고 관(官)에 조세(租稅)나 각종 부과금(賦課金)을 내고도 영수증을 교부받았고, 관리로 임명될 때도 각종 수수료를 지불하고 영수증을 챙겼다. 예를 들면 관리 임명장에 '시명지보(施命之寶)'를 찍어준 수수료를 지급하고 자문을 받아두었고, 관직 임명 소식을 알려준 기별서리(奇別書吏)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금품을 주고도 자문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지방관으로 임명된 경우에는 중앙 각 관아 - 예문관, 병조, 사헌부, 사간원 등에 '신제수필채(新除授筆債)'의 명목으로 수수료- 일종의 수고료를 지불하고 자문을 받았다.

 

영덕현령(盈德縣令)에 임명된 어떤 관리는 부임과정에서 29매의 영수증을 받았다고 한다. 새로운 관직에 임명되는 동시에 '지출'이 시작되었고, 가난한 관리에게 '관례(慣例)'로 지불되는 비용은 버거웠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금품수수가 음성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자문'을 통해 증빙되었다는 것은 아닐까?

 

올 7월부터는 5000원 미만의 금액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한다고 한다. 과자 한 봉지, 두부 한 모를 사면서도 당당하게 영수증을 요구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가 되는데 기여해야겠지만, 월급쟁이나 영세 자영업자의 주머니만 파헤칠 일이 아니라 변호사를 비롯한 고소득 전문직 사업자들의 수입을 파악하는데 더욱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선아(한국고전문화연구원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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