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화해·인간과 소통…자신과 대화 통해 상생을
우리는 매일 환경이나 인간과 같은 타자의 세계와 만나고 또한 자기 자신과도 만난다. 도구적 세계(환경)와 타인,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이 세 가지 세계와 만나는 인간존재의 특성을 독일의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라고 불렀다. 세계에 내던져져 인간은 세계와 만나고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것과 소통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물질적 세계와 만나면서 생존의 장이 풍요로워지거나 빈곤해지는 체험을 하며, 다른 사람과 만나면서 자신의 존재가 열리거나 닫히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또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가는 도피적 삶을 살기도 하고 자신과 대화하면서 더욱 영적으로 성숙해지기도 한다. 만남은 내적 경험을 만들고 그 경험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영혼의 퇴행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만남은 닫힘과 열림의 소통공간을 만들어내며, 파괴와 성장의 생명질서를 산출해 낸다.
근대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론을 통해 개체란 전체를 담고 있는 실체라고 말했다. 이는 화엄경에서 말하는 염주처럼 우주 전체가 한 개체 안에 반영되어 있으며 개체는 전체적 질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은 사회를 반영하고 있고, 개체적 인간은 인류라고 하는 종의 삶을 표현한다. 따라서 개체 없는 전체란 있을 수 없으며, 전체가 반영되지 않는 개체적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
개인은 로빈슨 크루소처럼 외딴 섬에서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거나 그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타인과의 만남을 전제하지 않는 삶은 맹목적이며, 자신과의 만남을 전제하지 않는 삶은 내용이 빈 것이다. 세상과의 만남과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인간의 삶은 있을 수 없다. 이기적인 자기만족에 빠져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배타적 삶이나 주관의 자아세계만을 탐닉하는 이기적인 삶은 세상과의 소통이 막혀있는 유령적 삶이다.
현대에는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의 화해, 인간과 인간의 소통, 인간의 자기 자신과 의 만남이 절실히 필요하다. 현대에 인류가 풀어야 할 과제는 바로 자연과 화해하고 인간과 소통하며,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상생의 질서를 마련하는 일이다. 자연과 화해하지 않을 때 인간은 인간중심적 자연정복의 전사가 되고, 인간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자폐증적인 이기주의자로 변하며, 자기 자신과 대화하려고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돌연 유령적 자아로 변하고 만다. 우리는 이제 세계와 횡단적으로 소통하고 생명의 언어로 이 세계와 만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만이 꽃 하나 속에 우주적 신비로움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의 삶이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소통과 열림의 체험을 하게 되며, 자신의 삶이 영성적으로 성숙하는 것을 내적으로 느끼게 된다. 소통과 열림은 현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의 과제인 것이다.
/김정현(원광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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