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환(전북도청 홍보기획과장)
요즘 들어 '명품도시'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인천세계도시축전에서도 '미래를 여는 명품도시'를 주제로 담론이 진행되고 있고, 새만금을 '세계가 부러워할 명품복합도시'로 개발한다는 정부 계획안이 발표되기도 했다.
도시 앞에 명품이 붙으니,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도시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명품도시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보았을 때 아름답고, 살았을 때 편안하고,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에게서 기품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바로 명품도시가 아닐까. 파리 사람들은 '불편한 것은 참아도 아름답지 않은 것은 참지 못 한다'고 한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명품도시 파리는 그러한 시민의식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거꾸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참아도 불편한 것은 참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건물이 세워지고 있는 서부 신시가지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곳도 한때는 '명품도시'의 기치를 내걸고 출발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명품'은 사라지고 '원룸'만 남았다. 품격이 느껴지고 살기 좋은 명품 신시가지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곳이 이렇게 됐다면, 분명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똑같은 돈을 투자해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건물과 건축방식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건축은 오로지 이윤획득의 수단일 뿐이다. 행정 입장에서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으니 그저 그들의 안목과 자질에 호소할 뿐이다. 그러나 돈 앞에서 건축의 공공성이나 미적 측면에 대한 고려는 설자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똑같은 재질, 똑같은 구조, 똑같은 층수의 거대한 원룸촌을 보고 살아야 한다. 이것은 공공의 시각적 측면에서는 거의 폭력에 가깝다.
그렇다고 좋은 건축이 화려함과 웅장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말뫼나 함마르비 같은 도시의 주거지구에서는 고층 빌딩을 찾아보기 힘들다. 단아한 단층 아파트에 물과 숲과 정원이 어우러져 더없이 안락한 분위기를 풍긴다. 수십 명의 건축가가 주거지구 조성에 참여했지만 행정기관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층수, 색깔, 전체적인 톤만 고르게 유지하되, 각각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래서 멋진 명품 주거지구가 탄생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 도시 한복판에 건축을 하면서도 공공성을 고민하는 건축가는 없고 눈앞의 경제적 이득만 따지는 건축주만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 승효상 씨는 "어떤 작업이든 공간적 개념을 품고 있다면 반드시 건축가가 함께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면 건축은 지어지는 순간 공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새만금만 명품도시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하루하루 명품도시로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좋은 건축은 좋은 삶을 만들지만 나쁜 건축은 반드시 나쁜 삶을 만든다고 한다.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작은 장소 한곳을 기획하더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삶을 사유하는 건축가가 있고 미래를 내다보는 철학이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전성환(전북도청 홍보기획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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