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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꼭 보고 읽어야 할 것들

◆ 관련 영화

 

 

1. 레 미제라블 (빌 어거스트 감독)

 

지금은 비구시의 시장으로 살아가는 쟝 발장(리암 니슨)은 절도죄로 19년형을 선고받았던 전과를 갖고 있다. 경찰서장 쟈베르(제프리 러쉬)가 부임하면서 그의 평화로운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법과 제도를 맹신하는 철두철미한 원칙주의자인 쟈베르는 과거 자신이 감방 간수로 있던 시절 가석방되었다가 달아난 범법자 쟝 발장을 떠올린다. 그리고 쟝 발장을 체포하기 위한 수사에 착수한다.

 

쟝 발장은 자신의 과거가 밝혀지고 팡틴이 죽자 그녀의 어린 딸 코제트(클레어 데인즈)와 비구시를 떠날 계획을 세운다.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된 쟝 발장은 코제트와 경계가 삼엄한 파리의 성벽을 뛰어넘어 수녀원으로 숨어들어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2. 인생은 아름다워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

 

1930년대 말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삼촌이 계신 로마로 오던 중 운명의 여인 도라로(니콜레타 브라스키)를 만난다. 로마에 도착한 귀도는 삼촌의 호텔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또 다시 도라를 만난다. 도라는 귀도와의 여러 번의 예상치 못한 만남으로 귀도에게 끌려 결혼을 한다. 얼마 후 그들에게 죠수아라는 귀여운 아들이 태어났고, 귀도는 바라던 대로 서점을 운영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에 따라 귀도와 죠슈아 삼촌은 모두 수용소로 끌려갔다. 사랑하는 가족이 끌려가는 모습을 본 도라는 유태인이 아니지만 가족을 따라 수용소로 따라간다. 억압받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어린 아들 죠슈아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귀도는 '1000점을 얻으면 탱크를 상으로 받는다'는 거짓말로 죠슈아를 속인다.

 

◆ 관련 도서

 

『세계의 빈곤, 누구의 책임인가?』(제레미 시브룩)

 

우리 시대의 가난을 가속화시키는 주범이 누구인가를 이야기한『세계의 빈곤,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 모두가 보지는 못해도 뉴스 등을 통해 다들 알고 있는, 그러나 그 누구도 정확히는 알고 있지 못한 세계 빈곤의 원인과 현상, 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특히 부유한 1세계의 관점에서 자비와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신, 사회구조적 원인과 정신적·도덕적 원인을 복합하여 면밀히 분석한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내일을 위해 전 세계가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본문은 중요한 용어를 옆 부분에 자세히 설명하였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은 생몰연도와 간단한 업적을 곁들였다. 또 부차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깊이 읽기' 코너를 통해 더 깊이 소개하였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베버는 '영혼이 없는 전문가, 가슴이 없는 쾌락주의자'를 자본주의 문명이 낳을 최후의 인간으로 꼽았다. "나는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 보라. 여기에 숭고하고도 절실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대는 성실할수록 되레 불행해질 수 있다. 자신이 최후의 인간은 아닌지 짚어볼 일이다.

 

베버는 돈벌이가 이제 스포츠 같이 되었다고 경고한다. '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신성한 목표가 사라지자, 돈벌이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다. 높은 연봉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잣대같이 쓰인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마음은 늘 죄책감과 초조함으로 가득하다. 더 많은 재산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한 마음을 누르고 숨을 골라보자. 자본주의는 아무리 돈을 모아도 더 많은 재산을 쌓으라고 우리에게 요구할 뿐이다. 우리는 결코 만족할 만큼 '부자'가 될 수 없다.

 

◆ 신문으로 읽기

 

[언론에서 보는 윤리와 분배의 관계] - 기회균등 할당제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단이 엊그제 '기회균등 할당제'를 두고 교육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아편 같은 제도라고 했다고 한다. 내신 강화 요구는 탈헌법적 발상이라고 매도했다. 아이들부터 대통령까지 막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세상이니 표현이야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주장의 수준이다. 너무 저질이다. 지적 능력은 물론이고 도덕적 자질마저 의심스럽다. 어떻게 이들을 국립 서울대 교수들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을까.

 

소외계층에게 조금 더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가 아편이라면, 서울대가 시행하는 지역 균형선발, 그동안 검토해 온 계층 균형선발 전형은 뭐라고 해야 하나. 미국 영국 대학들의 소수자 우대정책은 또 뭔가. 대학 교육이 부와 사회적 지위를 세습시키는 매개체가 되어선 안 된다.

 

-"권리에 중독된 서울대, 서울대 교수들" 한겨레 신문 2007.7.8.

 

/남성여고 교사 안치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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