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11 17:37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서 3.1절 행사 열려

4월 3-4일 우수리스크서 '4월참변' 추모제

일제 당시 망국의 한을 품고 러시아로 이주한 동포들이 일제에 맞서 치열하게 독립투쟁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인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일 3.1절 91주년 추도행사가 열렸다.

 

이날 오전 11시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카야 거리에 설치된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에서 김무영 주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를 비롯한 영사관 직원과 교민 등 50여명이 모여 일제 당시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극동 러시아 일대에서 독립만세 운동과 항일무장투쟁을 펼쳤던 선열들의 뜻을 되새겼다.

 

행사는 국민의례, 순국선열들에 대한 묵념, 애국가 제창, 대통령 경축사 낭독, 만세삼창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신한촌(新韓村)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온 동포들이 집단으로 모여 1911년 조성한 마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인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 ) 선생을 비롯해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부재(溥齋) 이상설(李相卨),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이종호(李鍾浩), 장도빈(張道斌) 선생 등 애국지사들이 거주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던 역사의 현장이다.

 

특히 이상설, 이종호 선생 등은 권업회(勸業會)라는 독립운동 결사체를 조직, 항일독립운동을 펼쳤고 신채호, 이상설, 장도빈 선생 등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창간된 순 한글 신문인 권업신문(勸業新聞)에서 주필로 활동했다.

 

신한촌 한인들은 1919년 국내에서 3.1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같은 해 3월 17일과 이듬해 3월1일 독립만세 운동을 벌였고 당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11개국 영사관과 6개 러시아 관청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기도 했다.

 

신한촌 한인들은 그러나 극동지역으로 진출한 일본군에 의해 1920년 집단 학살당했고 1937년에는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는 아픔을 겪었으며 이후 마을은 러시아인들의 주거지역으로 변했다.

 

한편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관은 이날 추모제에 이어 러시아 우수리스크시와 우수리스크시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 등과 공동으로 1920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등지에서 일본군에 의해 우리 동포들이 집단 학살된 이른바 '4월참변'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행사를 다음달 우수리스크시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추모행사는 4월 3일 우수리스크 시 박물관에서 '4월참변 기념 사진전'을 시작으로 4일에는 추모 가두행진과 추모식 등을 한-러 합동으로 연다.

 

'4월참변'이란 1920년 4월 4일 밤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군이 러시아 극동 지역에 있던 러시아혁명군과 정부 기관 및 관공서,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우수리스크 한인거주지 등지를 대대적으로 공격해 방화, 가택수색, 검거, 학살을 자행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는 한인동포 300여명이 집단 학살당하고 상당수의 주택이 파괴됐으며 우수리스크에서는 최재형,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 등 애국지사들이 일본 헌병대에 검거돼 정식 재판절차도 없이 학살됐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