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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페스티벌의 한복판에서 할머니 감독을 꿈꾸다 - 강지이

강지이(독립영화감독)

여름은 수많은 페스티벌이 손짓하는 계절이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개성의 페스티벌들이 각 지역에서 펼쳐진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을 신조 삼아 에어컨 냉기로 쿨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결코 땀냄새 나는 축제 현장의 감흥을 누리지 못한다.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필자도 퇴약볕 가운데서 땀을 흘리며 뛰어노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류였다. 그러다가 이번 해에 공교롭게도 몇몇 축제의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 지면을 통해 축제의 현장을 마주보면서 느낀 점들에 대한 소고를 쓰고자 한다.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은 2회째지만, 주최측 추산 총 7만 여명의 관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있는 문화 놀이터가 되었다. 여름을 한층 더 뜨겁게 즐기고픈 이들은 44개의 야외 음악 공연을 취향대로 즐기며 2박 3일 동안 마음껏 놀았다. 참가자들은 광란의 밤을 수놓았던 매시브 어택, 펫샵 보이즈, 뮤즈 같은 헤드라이너 공연뿐만이 아니라 낯선 이름의 뮤지션들 음악에도 환호하고 열광했다.

 

TV에서는 여전히 10대 아이돌들이 음악 세상을 평정하고 있었지만, 그곳은 미중년 아저씨 뮤지션들이 단연 인기였다. 첫 내한공연을 가진 펫샵 보이즈의 보컬 닐 테넌트는 공연 도중에 정갈한 턱시도를 입고 모자 속에 숨어 있던 숯 없는 흰머리를 드러냈다. 이 소년의 목소리는 변함없는 미성인데, 그가 할아버지가 되었다니 가슴이 찡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고 노래하는 늙어가는 뮤지션들을 바라보며 부디 건강해서 다음 공연 때도 찾아와 주길 간절히 빌었다.

 

제 6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 축하식에서 우리나라 재즈1세대가 공연을 했을 때도 같은 바램이었다. 미8군을 통해서 재즈 음악을 처음 접하고 매료되었던 청년들은 이제 선생님이란 호칭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 일곱 어르신의 음악을 향한 열정은 어느 시절보다 더 젊었다. 관객들은 매끄러운 연주보다는 노환으로 치아가 거의 없어서 소리가 새는 트럼펫 독주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노년의 뮤지션들을 보면서 충무로 노년 영화인의 현실이 떠올랐다. 극영화 쪽에서 활동중이신 노년 감독님은 열 손가락을 채우기 힘들고, 할머니 감독님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는 세상의 깊이와 넓이, 부피와 무게를 담은 나이 지긋한 영화를 보고 싶은데, 이런 영화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작을 꺼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 예술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영화들을 간간히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창동 감독님의 〈시〉처럼 감독과 함께 성숙해가는 영화를 보면 반갑고 고맙다. 나이 든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며, 영화인으로 늙어가다가 할머니 감독이 되어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꿈을 꾸었다. 나이에 굴하지 않는 멋진 예술가들의 영혼의 땀이 마음속으로 파고들면서, 여름 무더위보다 더한 뜨거운 소망이 새빨갛게 피어올랐다.

 

/강지이(독립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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