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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근 前 지사는 - DJ 경제고문 활약하며 외환위기 극복

▲ 이경재 선임기자(왼쪽)가 유종근 전 지사와의 인터뷰 후 유 전 지사의 늦둥이 아들 주영군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교수, 도지사, 대통령 특보, 대기업 회장, 중소기업 CEO. 인생 3막을 살고 있는 유종근 회장의 이력이다. 예순 여덟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게 보였다. 제빵공장 일과 아이 교육, 신앙생활에 푹 빠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1995년 초대 민선 전북도지사로 일할 당시엔 화려한 넥타이, 거리낌 없는 말투, 파격적인 인사 등으로 주목받았다. 과거 관선 도백의 이미지를 싹 벗겨낼 만큼 개혁적인 도정을 수행했다. 7년동안 두차례(95~2002) 전북지사를 역임했다.

 

유 회장이 정치와 인연을 맺게 된 건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중이던 동생이 경찰에 연행되는 걸 보고 그 충격으로 부친이 돌아가신 것이 계기다. 미국 유학 당시, 서울대 4학년과 2학년에 재학중인 종성(미 샌디에이고 대학 교수)·종일(KDI 교수·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위위원장) 두 동생이 모친 회갑을 맞아 정읍 집에 왔다가 잠복중인 형사들에게 연행됐고, 그 충격으로 부친이 돌아가셨다.

 

이후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미국에서는 인권문제연구소장을 맡았다. 몸담고 있던 뉴저지주 대학에서 워싱턴까지 4시간이나 소요되는 등 여건이 안 됐지만, "균형잡힌 시각을 가진 당신이 맡아야 한다"는 DJ의 요청에 따라 소장을 맡았다.

 

당시 "'DJ=좌파'라는 인식으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며 DJ에게 '대중경제론'을 저술하도록 요청했고 유 회장이 이 일을 도왔다.

 

유 회장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고문으로 활약했다. 고교시절 경제학을 공부해 나라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꿈을 가졌고 마침내 외환위기 때 그 기회를 실현했다.

 

한나라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던 인물이었지만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경선에 나섰다가 5년전의 세풍그룹 뇌물 사건으로 3년 넘게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1년3개월을 남기고 2007년 12월 31일 특면사면됐다.

 

유 회장은 지난해 10월5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장로 장립식을 갖고 장로에 취임했다. 부인 김윤아 여사(49)는 이화여대 신학대학원을 나와 미국 이민교회에서 목사로 활동했다. 평택신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고 논문만 남겨 놓고 있다. 유 회장 수감생활중 성령체험을 한 뒤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점심 때 자리를 같이 한 김 여사는 "목회 일과 아이 치료차 미국에 갔는데 바람 나 도망갔다는 소문이 돌더라"며 "주변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악성 소문이 나도는 등 견디기 힘들었지만 하느님의 힘으로 극복했다"고 허허롭게 웃었다.

 

유 회장은 교수와 도지사, CEO를 역임했지만 모아놓은 재산이 별로 없다고 했다. 나이 어린 아들 딸이 정신적, 재정적으로 자립할 때까지 지원해야 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경제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은퇴 후엔 딸 예지양(중 2)과 같은 자폐아를 위한 교회와 학교를 설립해 봉사하는 것이 소망이다.

 

'유종근의 신국가론', '한반도 통일의 철학적 원리', 'IMF-알아야 이긴다' 등 여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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