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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문화재 대중화 길 연 임실 필봉농악 - 마을굿축제로 전국 중요무형문화재 교류 '물꼬'

도시민들 가까이 할 수 있게 전국 9곳 지부 설치 / 마을굿 걸맞게 사람사는 맛 나는 마을공동체 꿈

▲ 임실 필봉농악 공연 모습.
소중함이 곧 대중성을 확보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성과 거리를 둬야 소중한 것으로 비쳐지는 경우도 있다. 무형문화재가 그렇다.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큼에도 자체 생명력을 갖지 못해 '문화재 보호'라는 호흡기에 연명하는 사례가 허다한 게 무형문화재다.

 

그러나 인공호흡기로는 한계가 있다. 국민이 사랑하고 아낄 때 호흡기를 떼고 당당히 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임실 필봉농악은 무형문화재가 어떻게 가야할 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농악의 대중화에 씨앗

 

24일부터 이틀간 열릴'필봉 마을굿축제'를 앞둔 임실 필봉문화촌. 한 낱 뙤약볕 한쪽에서 축제장을 꾸미고 홍보 안내시설을 설치하는 등의 축제 준비로 땀을 흘리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대학생들이 무리지어 장고를 메고 연습에 한창이었다.

 

'필봉 마을굿축제'는 바로 마을굿이 전국적인 축제로 우뚝 설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다. 전국의 중요무형문화재들이 축제의 무대에 서고, 대학과 사회 풍물동아리들이 '밤샘 탈놀이'를 펼치며 지역민들이 풍물로 하나 되는 장을 연출한다.

 

"그동안 전국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5개 농악들간 교류가 없었습니다. 외부의 관여나 지원 없이 농악단들의 자발적 의지로 한 자리에 서는 기회가 마을굿축제를 통해 마련됐습니다."

 

필봉 마을굿 축제는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봉농악의 오늘이 있게 한 필봉 양순용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취지로 출발했다. 양순용 선생은 60~70년대 농악의 대중화에 씨를 뿌렸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지도를 받았다. 김명곤 전 문광부 장관도 그중 한 분이다. 당시 필봉에게서 배웠던 제자들이 현재 필봉농악보존회 단원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마을굿 축제의 또다른 힘은 자원봉사자다. 매년 30~4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나서고 있다. 축제 1기부터 17기까지 자원봉사자들간 모임이 이루어질 정도로 끈끈하다. 마을굿에 걸맞게 주민들과 함께 준비하는 것도 색다르다. 주민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농산물을 판매한다. 필봉굿 자체가 마을굿이며, 마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농악이다. 문화재 보유자인 양진성씨가 아버지의 대를 잇고 있지만, 필봉마을은 여전히 문화재의 보금자리다. 다만 70~80년대 60여 가구에 이르던 마을이 지금은 20여호로 줄면서 주민들끼리 굿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보존회 단원 70여명중 마을 주민이 2명밖에 안된다. 마을굿을 이어갈 수 있는 '마을'을 꿈꾸는 게 보존회장의 바람이며 꿈이다.

 

△방학이면 대학생 연수로 들썩

 

마을굿 축제는 필봉농악의 결실이다. 그 결실이 튼실한 것은 필봉농악보존회의 활발한 활동이 바탕이 됐다. 필봉농악보존회는 연중 상설 교육에다 동계·하계 전수교육, 전통문화체험학교, 지역 주민들에 대한 농악·풍물교육을 벌이면서 대중속으로 들어갔다.

 

여름·겨울방학 동안 1주일씩 8주에 걸쳐 이루어지는 교육 연수생만 연간 2000명 정도. 70년대까지 거슬러 합산할 경우 필봉농악을 거쳐간 연수생이 10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존회는 추산한다.

 

임실군 12개 읍면에 농악단이 만들어진 것도 필봉농악의 힘. 보존회는 90년대 중반부터 주민들에 대한 무료 강좌를 통해 농악에 대한 관심을 끌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읍면 농악단은 각종 행사에 앞장서면서 지역의 문화를 살찌우고 있다.

 

필봉 농악은 임실을 넘어 전국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 서울·경기·대구·여수·순천·전주·군산·순창 등 전국 9곳에 필봉농악 지부가 결성됐다.

 

"대학내에서 풍물연습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취업 등에 얽매이면서 학업분위기를 헤친다는 이유로 연습공간마저 폐쇄되는 상황입니다."

 

도시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농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지부 결성에 나섰다는 게 양진환 보존회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지부장들은 필봉농악에서 교육을 받았던 수강생 출신들이다. 각 지부에 연습실을 두고 있으며, 지부장들이 필봉문화촌에서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

 

△"사물놀이 인식은 곤란"

 

외형상으로 화려한 필봉농악이지만, 내면에는 아픔도 많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문화재 보유자와 전수조교 등이 지원을 받고 있고, 전수관에 대한 지원도 받고 있어 그렇지 못한 다른 문화예술단체에 비해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지만, 농악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50~60명의 단원이 공연을 위해 한 번 움직이려면 최소 200만원 이상 경비가 소요됩니다. 그러나 사물놀이 정도로 여기는 게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양 국장은 8~9시간에 걸치는 전체 공연을 재현하는 자리가 결국 정월대보름 굿축제 뿐일 정도라고 말했다.

 

보존회가 운영하는 전통문화체험학교도 생존을 위한 절실함에서 시작됐다. 풍물과 민요, 대동놀이, 천연염색, 난타, 국악공연, 탈춤 등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연간 3만명이 찾을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심어주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필봉 농악의 생존과는 거리가 있다.

 

"대학의 음악 전공자들이 농악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사회적 대우가 있는 것도, 경력을 챙겨주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마을굿이 유지되려면 최소한 20명의 주민들이 있어야 하는 데,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전통문화체험학교 운영이나, 한옥자원을 활용한 야간상설 공연을 진행하는 이면에 단원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가 담겼단다.

 

결국 보존회가 희망하는 것은 바로 마을에서 농악을 할 수 있는 여건의 마을을 만들어 내는 일. 마을에 사람이 들어와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필봉굿 자체가 공동체의 마음이며, 사람이 사는 맛이 여기에 담겼다고 보는 것이다. 마을 자체에서 희로애락을 풀어내는 마을굿이 끊기지 않고 계속될 때 필봉굿도 살고 그 정신도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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