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에 예기 돼…이장선에 승무 배워 / 결혼 동시에 접은 춤, 30년만에 날개 / "우리 춤은 무거워야" 두 딸에게 전수
지난 1931년 제1회 춘향제 당시 9세의 예기(藝妓)가 광한루원 앞에서 공연한 화무는 두고두고 회자됐다. 1941년 제11회 춘향제까지 이 예기는 매년 화무, 승무, 민살풀이를 추며 춘향제의 명물로 떠올랐다. 그 손짓과 몸짓을본 사람들은 ‘춤은 조갑녀’라는 말을 남겼다.
남원 권번 최후의 예인 조갑녀 명인(91)은 그렇게 춤의 전설이 됐다. 그는 맨손으로만 추는 민살풀이의 대가다. 모든 움직임을 몸에 의지하는 춤은 정중하고 법도가 분명하고 무거우면서도 격조가 있다는 평이다.
정작 조 명인은 “춤을 출 때 아무 생각이 없어서 좋다”고 전했다.
그는 제자인 딸들에게 “우리 춤은 반드시 무거워야 가치가 있다”며 “그 무거움 속에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으니 아무리 좋은 가락도 무겁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 춤은 속 멋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어렵고 어지간히 해서 잘 춘다는 말을 듣기 힘들다”며 “춤은 곧 마음이다. 몸으로 배워 마음으로 춰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조 명인은 1923년 남원 권번의 악기 선생이었던 부친 조기환 씨의 다섯 딸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고모인 조기화 씨도 남원 권번의 제일가는 예기였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7살부터 예기가 됐다. 나라가 망하자 고향인 곡성 옥과로 내려온 이장선 명인(1866~1939)으로부터 승무를 배웠다. 스승은 임금 앞에서 춤을 췄던 명인으로 어느 날 남원 권번에 왔다 춤 솜씨를 흉내 내던 어린 조 명인의 인상과 자태를 보고 제자로 거뒀다.
조 명인은 일제강점기 독립 투사에게 후원금을 내면서 일본 헌병대의 부름에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식민지 통치 하에서 우리 춤과 판소리, 시·서·화, 사서삼경을 공부하며 전통을 익혔다.
하지만 예인으로서 조 명인의 삶은 결혼과 함께 단절된다. 1941년 부친이 작고하고 이듬해 당시 전라도의 세 번째 부자로 꼽히던 (주)한성물산의 며느리가 된다. 그는 12남매의 어머니로 30년간 춤을 떠난다. 행여 자식들에게 자신이 춤꾼이었다는 사실이 노출될 경우 피해가 갈 것을 염려해서다. 명인은 그렇게 자신을 숨기며 살았다.
그러던 가운데 지난 1971년 남원 광한루원에 수중누각인 완월정의 낙성식에서 민살풀이를 다시 무대에 올려야 한다는 주위의 부탁에 예술혼을 일깨웠다. 이어 1976년 춘향제 무대에도 다시 올랐다.
그의 딸들도 어머니 모르게 춤을 시작했고 지금은 서울에서 전통무용 아카데미와 민살풀이춤 전수관, 무용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997년부터 그는 여섯째인 정명희 씨와 막내 정경희 씨에게 춤을 전수하고 있다.
두 자매는 “어머니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춤이다”고 말했다.
조 명인은 지난 2004년께 남원에서 새벽 운동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임종까지 준비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빠졌었다. 당시 그는 예기 인생의 복원을 위한 삶이 한 번 더 주어졌다고 여기고 민살풀이의 전승을 본격적으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교육용 민살풀이 한춤 비디오를 제작하고 2007년 한국 예술의 전당 어머니 춤 공연과 2008년 하이서울페스티벌 초청 창덕궁에서 열린 ‘천년만세’에 한 번 더 출연했다. 이듬해에는 남원에서 민살풀이를 선보이고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노름마치뎐-춤!조갑녀’로 다시금 관객을 사로잡았다.
조 명인은 “제대로 알고 하면 두려울 게 없다”는 평소 지론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정명희·경희 씨는 “어머니는 지난해와 올해 다시 병원을 오고 가면서 마지막 소명을 다하고 있다”며 “전수자들이 전통춤을 즉흥으로 추게 하고 그때그때 자리에 맞게 춤을 보기 좋게 만들어 내도록 안무를 꼼꼼히 지도하고 있다”고 들려주었다.
두 자매는 이어 “본인이 스승의 춤을 배운 뒤 자신만의 춤을 만드는 예술세계를 구축해서인지 어머니는 수업시간에 전수자들이 스스로 터득하도록 시선을 떼지 않고 무섭게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 조 명인은 자신의 일생을 관조하면서 다시금 사라져간 조선민중의 한이 담긴 민살풀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여생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립국악원이 그의 권번 예기 인생사를 구술로 채록했다. 그의 예기 인생과 연결된 남원 권번의 족적을 찾는 서적 출간도 오는 연말을 목표로 준비되고 있다. 오는 10월2일에는 전주에서 정경희 씨의 민살풀이춤 공연이 예정돼 명인의 맥이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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