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갑 학술대회…"민중적 저항 주목" / "지역 정체성 연결 때 신중해야" 주장도
동학농민혁명에서 전주가 갖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상황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전주 정신’의 근간으로 삼자는 주장이 학술대회에서 제기됐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라감영이었던 전주는 봉기 초기부터 농민군들의 1차적 목표였으며(전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나아갈 것-사발통문 결의 내용), 국내 역사상 처음으로 주민자치를 시도한 ‘집강소’설치의 중심 무대였다. 그러나 전주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는 조선왕조의 발상지에 가려져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15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주정신과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에서 역사학자 이이화 씨는 기조강연을 통해 “농민전쟁의 진원지인 전주 또는 호남 사람들은 이를 지키는 역사인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전주 정신’을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역사적 기제들이 주로 ‘후백제의 도읍지’나 ‘조선왕조의 발상지’였지만 후백제의 경우 한국사 전체로 보면 국부적이며, 전주에서의 조선왕조는 ‘하나의 환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낡은 틀을 깨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열려는 열망을 담은 동학농민혁명의 민중적 저항에서 전주정신을 찾을 필요가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주정신을 바르게 해석하고 평가하는 게 동학농민혁명의 의미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또 동학농민혁명에서의 집강소 부분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농민군은 집강소라는 ‘통치조직’을 통해 평등의 정신과 폐정개혁을 실현했고, 근대민주정치 확립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 아래서다.
김양식 충북발전연구원 충북학연구소장은 특히 1894년 7,8월 전주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거버넌스의 효시라고 할 집강소가 갖는 의미가 크다고 보았다. 그는“집강소가 민·관 합의로 설치된 역사상 최초의 주민 자치기구이자 민 주도의 협의기구였다”며,“농민군이 지향했던 ‘의로움’은 오늘날의 ‘정의로운 사회’구현과도 통해 농민군의 정신적 가치를 전주정신의 골간으로 삼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도연 원광대 교수는 전주가 경험했던 역사적 사건 가운데 동학농민혁명이 가장 치열하고 영향력이 컸으며 지금도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라고 들고, 이를 통해 전주를 재조명하고 전주정신을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주는 한국사의 고비마다 ‘저항의 역사’라는 신화를 간직한 곳이며, 이러한 저항과 좌절의 역사 속에서 가장 민족적인 풍류를 활짝 꽃피웠다고 보았다. ‘전주 정신’을 ‘저항과 풍류’로 〈혼불〉에서 그린 소설가 최명희의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다.
반면, ‘전주 정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정진영 안동대 교수는 안동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브랜드를 정립한 과정을 예시로 들며, ‘전주 정신’과 등치될 ‘동학 정신’은 “시장이나 시 당국이 아니라 시민의 정신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읍·고창 등 도내의 이웃 시·군과의 관계 설정 문제, 지속성의 문제 또한 고려해야 한다고 정 교수는 덧붙였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동학이 전북의 정신으로 검토될 수는 있어도 전주정신으로는, 상관관계는 있지만 이를 바로 등치시키는 것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전주정신을 정립해 갈 때 동학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면서 “동학정신은 전북정신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영우 충북대 교수 역시 “동학농민혁명을 전주의 정체성과 관련해서 검토할 때 ‘전주’만이 아닌 ‘전라도’ 나 ‘전북’이 더 부각된다”며 “동학농민혁명과 지역정체성을 연결시키려 할 때 충분한 사실 규명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전주시가 후원한 가운데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소외된 현실을 뚫고 지역의 정체성과 정신을 확립하자는 취지에서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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