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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 걸어서 출장

▲ 곽인섭 완주군 삼례읍 산업경제팀장
1979년, 공무원을 처음 면사무소에서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직원들이 출장 시 이용했던 교통수단으로는 면장용으로 지급된 90cc 오토바이와 몇몇 직원들의 오토바이 그리고 삼천리호 자전거와 크라운 자전거가 전부였다. 비포장도로가 많고 도로사정이 열악해, 차도는 수시로 사리부설이라는 명분아래 주먹만한 돌들이 섞인 하천 막사를 깔아 놓아 자전거를 잘 타고 다니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큰 돌을 비켜 핸들을 조종하는가가 관건이었다. 또한 마을길을 들어서면 황토 흙으로 된 길이 많아 조금만 비가와도 황토 죽으로 변했다. 각시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으며 자전거 바퀴에 흙이 들러붙기 시작하면 바퀴가 굴러가지 않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를 회상해보면 지금과 대조적인 느림의 미학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느리지만 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주민들과의 정담은 또한 사람 사는 냄새를 느끼게 했다. 지금이야 자동차로 휙 지나치면 알만한 사람이 지나쳐도 못 본 척하면 그만이지만 그때만 해도 몸을 감출 수 없으니 당연히 반갑게 인사하고 정담을 나누는 것이 다반사였다.

 

오늘 같은 시대에 자동차 없이 걸어서 출장하는 묘미는 그때를 다시금 그리워지게 한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삼례읍은 인구가 1만 6000명 정도이다. 어떻게 보면 조그마한 읍 일 수도 있겠지만 1만 2000여명이 읍내 소재지권에 모여 사는 소도시로 타 시군 같았으면 군청소재지가 될만한 큰 읍이다. 그러다 보니 도시 민원이 많고 돌볼 것이 많아 자동차로 출장 다닌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 출장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걸어서 출장 다니기다. 걸어서 출장을 다니다 보니 자동차로 다닐 때와는 다르게 그냥 지나쳤던 읍내 곳곳의 사소한 문제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손된 도로, 움푹패인 자전거도로 등 그간 챙기지 못했던 주민 민원현장 30여개소를 찾아가 주민불편 사항을 해결할 수 있었다. 걸어서 출장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주민들과 만나 지역 내의 민원과 주민들의 어려움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어 신속한 행정처리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걸어서 출장은 대민행정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내 몸 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하루에 1~2시간씩 걸어 출장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산소 운동으로 이어져 체중이 8kg정도 빠지는 효과를 보게 되면서 더 이상의 운동이 필요 없는 힐링 출장이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업무를 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공무원의 제1덕목은 주민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한다. 주민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주민들과 가깝게 호흡하는 도보 출장이야말로 일석다조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번쯤 시도 해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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