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도시가스 보일러 사고 당일 수리한 뒤 참변 / 사인 가스중독 확인에도 원인규명은 시간 걸릴 듯
지난 8일 오후 6시 38분께 전주시 아중119안전센터에 신고가 들어왔다. 전주시 우아동의 한 아파트 5층에 사람은 있는 것 같은데 문을 안 열어준다는 가족의 신고였다.
구급대원 3명과 화재대원 4명 등 총 7명이 출동했다. 현관문을 강제 개방하고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났다. 거실에는 배모 씨(78)와 손자(24), 화장실에 배 씨의 아내 윤모 씨(71)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모두 숨을 거뒀다.
숨진 윤 씨는 이날 오후 2시께 전북대병원에서 퇴원했다. 사고 당일은 뇌경색으로 입원한 윤 씨의 퇴원을 위해 익산에 사는 손자가 전주를 찾은 날이다.
간호로 집을 비운 배 씨도 5일 만에 귀가했다.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아 오후 3시께 수리를 위해 기사를 불렀다.
기사가 돌아간 오후 5시 15분께 가족은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려다 가스에 질식해 쓰러졌다.
손자는 오후 5시 13분에 어머니 김모 씨(52)에게 ‘(할아버지) 손발이 차갑고 계속 어지럽다 하시고’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오후 5시 22분께 ‘엄마가 집으로 갈까’라는 물음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아파트에 갔더니 안에서 문을 열어 주지 않아 김 씨는 119를 불렀다.
배 씨의 아들은 “아파트 보일러를 교체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며 “이날 수리를 한 뒤 사고가 난 게 석연치 않다”고 했다. 배 씨는 또 아들이 “지난해 소방에서 의무복무를 마치고,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올해 소방공무원 대규모 채용을 반기며 열심히 준비했는데,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1980년 지어져 3개 동 95세대가 모여 산다. 이웃은 “도시가스로 보일러를 돌리는데 왜 질식했는지 모르겠다”며 “공무원이었던 배 씨는 이 아파트 관리소장도 지냈다”면서 안타까워 했다.
대부분 고령이 입주한 이 아파트에서 벌어진 사고의 원인 규명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유서와 타살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9일 전북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가스안전공사, 전북도시가스는 도시가스보일러에서 누출된 가스가 집 안으로 유입된 경위를 밝히기 위해 정밀 감식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결과 이들의 사인은 모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확인됐다”면서 “한동안 보일러를 작동하지 않은 가운데, 기계적 결함인지, 집 구조의 문제인지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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