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남해는 멸치맛이 ‘제철’
20명 이상땐 전통조업방식
죽방멸치 잡기 체험도 가능
오늘부터 미조항 바다축제
지난달 26일 오후 남해군 미조항 선어 위판장. 이제 막 경매가 끝난 것으로 보이는 생멸치가 나무상자에 가득 담겨 바닥에 진열돼 있었다. 모두 액젓을 담글 때 쓰는 길이 7㎝ 이상의 대(大)멸들이었다.
양손에 고무장갑을 낀 어민은 선반 위에 올려진 멸치를 소금에 부지런히 버무렸다. 소금에 버무려진 멸치들은 선반 바닥에 나 있는 구멍을 타고 내려가 미리 준비돼 있던 플라스틱 통에 안착했다. 작업 과정을 지켜보던 한 도매상은 “이 멸치들은 적어도 1년 이상 숙성돼야 먹을 수 있다. 멸치 액젓은 김치 담글 때도 쓰고 음식을 조리할 때도 쓴다. 쓰지 않는 요리가 없을 정도다“고 말했다.
미조항에서 남쪽으로 바라다보는 선착장에는 어부 수십여명이 멸치잡이 배 위에서 그물을 부여잡고 멸치를 털어냈다. 그 주위로 하얀 갈매기들이 날아다녔다.
‘몸이 매우 작고, 큰 놈은 서너치, 빛깔은 청백색이다. 6월 초에 연안에 나타나 서리 내릴 때 물러간다. 성질은 밝는 빛을 좋아한다. 밤에 어부들은 불을 밝혀 유인해, 함점에 이르면 손그물로 떠서 잡는다. 이 물고기로는 국도 만들고 젓갈도 만들고, 때로는 고기잡이 미끼로 사용하기도 한다.’ ·-정약전 자산어보 중
△남해의 보물 ‘멸치’
멸치의 제철이 돌아왔다. 남해 멸치는 4월 말부터 조업을 시작해 그해 11월까지 이어진다. 5월 이맘때 잡히는 멸치는 액젓을 담글 때 쓰는 대(大)멸이 많지만, 반찬으로 먹는 소멸(지리멸)도 곧잘 잡힌다. 멸치는 다양한 방식으로 잡힌다. 멸치 어군을 따라 그물을 직접 펼쳐서 잡는 권현망부터 그물을 수면에 수직으로 펼쳐서 조류를 따라 흘려보내면서 물고기가 그물코에 꽂히게 해 잡는 유자망, 그물을 육지와 연결해 일정한 장소에 설치하고 나중에 수확하는 정치망, 무엇보다 조류를 이용해 생태적 전통어법으로 멸치를 잡는 죽방렴까지 멸치를 잡는 방법도 각양각색, 잡힌 멸치도 다양하다.
정약전 선생은 멸치를 두고 업신여길 멸(蔑)자를 써서 멸어(蔑魚)라고 했다. 한꺼번에 많이 잡힌다고 해 ‘선물용으로 천한 물고기’라고 불렀을 정도다. 또 ‘물 밖으로 나오면 급한 성질 때문에 금방 죽는다’해 멸할 멸(滅)자를 써서 멸어(滅魚)라고 불렀다. 그 옛날 업신여겨진 멸치는 오늘날 상품성을 인정받는 귀한 물고기가 됐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려진 중(中)멸 이하의 멸치들은 바로 배 위에서 삶아져 건조되는데 사람의 입속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형태를 유지하며 불멸(不滅)을 누린다.
△남해 죽방렴과 멸치잡이 체험
지족해협. 이곳은 남해 창선도와 남해도 사이 약 350m 폭의 물길에 자리 잡고 있다. 시속 13~15km에 이를 정도로 물살이 빠르다. 이곳에는 23개의 죽방렴(竹防簾)이 마치 학의 날개처럼 사방에 설치돼 있다. 죽방렴은 문자 그대로 대나무로 만든 어살(魚箭)을 통해 멸치를 잡는 한 방식이다. 약 550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죽방렴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빠른 곳에 ‘V’자 모양으로 참나무 말뚝을 박고 그 한가운데 역시 참나무 말뚝 기둥을 둥그렇게 박아 ‘임통’을 만든다. 참나무 말뚝 사이는 대나무로 촘촘하게 발을 쳐 ‘어사리’를 만든다. 임통은 밀물 때는 열리고 썰물 때는 닫히게 돼 있다. 이러한 방식 때문에 한번 들어온 멸치는 밖으로 빠져나가기 힘들다. 어부는 썰물 때 임통에 들어가 쭉대(뜰채)로 멸치를 건져 올리거나 후릿그물을 이용해 한꺼번에 잡는다. 손상 없이 깨끗한 상태에서 멸치를 잡을 수 있어 상품성이 높다. 어획량이 적어 일반 조업방식으로 잡는 멸치보다 상대적으로 비싸다.
지족어촌체험휴양마을위원장인 김철식(52)씨는 죽방렴 방식으로 멸치를 잡는 어부다. 그는 방치돼 있던 죽방렴 제104호를 고쳐 8년째 멸치조업을 해오고 있다. 이곳에는 가문 대대로 죽방렴 방식으로 멸치 조업을 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김씨가 특별한 이유는 자신이 운영하는 죽방렴을 일반인들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했기 때문이다.
죽방렴은 4월부터 11월까지 체험할 수 있다. 사람 수가 너무 적으면 체험할 수 없으므로 보통 20인 이상은 꾸려야 한다.
△멸치쌈밥과 원조 ‘우리 식당’
남해군 삼동면 지족 삼거리 인근에는 십수개의 멸치음식점 모여 있다. 미조항에도 멸치음식점 상권이 형성돼 있긴 하지만, 이곳 지족에는 43년째 멸치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특별한 식당이 있다. 이순심(72)씨가 운영하는 ‘우리식당’이 바로 그곳이다. 일흔의 나이를 훌쩍 넘긴 이씨는 지난 수십년을 멸치와 씨름하며 살았다. 43년 전 이곳 지족에서 식당을 열어 지금의 ‘멸치쌈밥’이라는 메뉴를 최초로 개발했다고 알려졌다. 이 가게의 인기 메뉴는 멸치쌈밥과 멸치회무침이다. 멸치쌈밥은 커다란 솥에 우거지를 깔고, 그 위에 이씨가 직접 만든 된장과 멸치를 통째로 넣고 간장과 멸치액젓 등으로 조린다. 생멸치를 사용했지만,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멸치회무침은 막걸리에 씻은 멸치살과 미나리와 깻잎 등 각종 채소를 초장과 함께 버무려 만들었다.
이씨는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만들고 무엇보다 손님을 향한 관심이 음식 맛을 더욱 좋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멸치는 1년 중 봄과 가을에 먹는 게 제일 맛있다고 한다. 특히 5월에 잡히는 멸치는 뼈가 부드럽고 살이 쫀득쫀득해 맛이 일품이다.
△남해 보물섬 미조항 남해 멸치&바다 축제
매년 5월이면 남해 미조항에서는 멸치 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15회째를 맞은 축제는 이전에는 ‘미조항 멸치축제’라고 명명했지만, 최근에는 ‘바다’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남해군 관계자는 “미조항은 우리나라 수산물의 전진 기지로서 멸치 이외에도 다양한 수산자원들이 잡히기 때문에 축제 개념을 조금 더 넓히기 위해서 최근 ‘바다’의 단어를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미조항 남해 멸치&바다축제는 마늘 축제, 독일마을 맥주 축제와 함께 남해 3대 축제로 불린다.
‘미륵(彌勒)이 도왔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미조항은 풍부한 수산자원과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군항(軍港)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에는 해양수산부 ‘아름다운 어항’으로 선정됐다. 미조항은 크게 북항과 남항으로 나뉜다. 북항은 주로 작은 어선들이 정박하고 남항은 선어·활어위판장이 있다.
올해 미조항 멸치&바다축제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열린다. 남해 멸치의 싱싱함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된 축제는 축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성한 이색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준비된다.
/경남신문=고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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