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읽어도 좋으니
책 아니어도 좋으니
깊이 생각하기 필요
내가 동화책을 읽었을 무렵이다. 아버지는 삼국지 전권 세트를 사주며 말했다. “삼국지를 3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하지 마라.” 덕분에 수년간 아버지와 대화 다운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삼국지를 3번 읽게 되었다. 문제는 그 사이 아버지는 삼국지를 더 읽었다는 것이다. “삼국지를 5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말을 섞지 말거라.” 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한국에서 ‘독서량’이란 그 사람의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다. 하지만 이런 외침도 독서량 통계라는 ‘팩트’ 앞에서는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1명이 연간 평균 8.3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독서자만을 대상으로 하면 평균 13.8권이다. 그리고 항상 이 통계의 말미에는 지난해에 비해 독서량이 너무 떨어졌다,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는 설명이 붙곤 한다. 그런데 독서량이 적은 게 나쁜가? 아니 애초에 우리의 독서량은 적은 것인가?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책을 읽는 세대다.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를 보면 “1250년에는 잉글랜드의 제법 부유한 가정에서도 책을 3권(성서, 기도서, 성인의 전기)을 가진 경우는 비교적 행운에 속했다”며 말한다. “우리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나 단테보다 이미 더 많은 책을 읽었음을 간과하고 있다.”라고 밝힌다. 우리는 이미 이름을 대면 알만한 위인들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 지금 이 글을 읽을 정도의 독자라면 “소크라테스! 넌 날 따라오려면 멀었다”라고 당당히 외쳐도 된다(아니다). 무신론자를>
우리가 흔히 보는 독서량 통계는 ‘종이 책’만을 포함한 것이다. 여기에는 전자책, 만화, 잡지, 학습지, 교과서 등이 빠져있다. 또한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접하는 많은 정보는 어떠한가? 분명 쓸모라고는 눈곱만큼?찾을 수 없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가끔 책 보다 괜찮은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나는 책이 ‘사람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밝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왜 책이 아닌가?
지난 금요일 북스포즈의 심야책방에서는 종이책이 아닌 ‘만화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이나중 탁구부’라는 엽기 만화였다. 이 책을 인생 만화로 꼽은 분은 ‘탁구대를 훔쳐간 할아버지와 되찾으려는 아이들 사이에서 말다툼’하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할아버지와 아이는 누가 탁구대를 사용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느냐로 나름의 논리대결을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만화를 소개해준 분은 그 장면에서 늙음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냥 웃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를 생각해지면 독서가 피로해진다. 적게 읽어도 좋으니 혹은 그것이 책이 아니어도 좋으니 재미있는 것을 찾고 곰곰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오지 않은가. “어떤 이들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단순한 모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다른 어떤 이들은 껌종이에 쓰인 성분표를 읽고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다.” 물론 책을 많이 팔아야 행복한 서점 주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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