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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청자의자

청자 의자
청자 의자

유약을 입혀 높은 온도에서 구운 자기는 최상의 기술로 완성되는 섬세한 예술품이다. 고려는 이러한 자기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작했으며 이는 도자기 역사에서 의미가 크다.

찬란한 공예품을 탄생시키고 향유했던 고려는 청자를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고려 건국 이후, 선종의 유행, 차의 재배와 차를 마시는 풍습, 그리고 그 차를 담아 마시는 도구인 완의 지속적인 수요는 중국산 자기 대신 고려에서 자체 제작의 동기를 부여했다. 고려에서 완을 중심으로 청자의 제작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차 문화의 확산과 발전으로 다완 외에 잔, 잔탁, 차를 보관하는 합, 물을 끓이거나 따르는 주자, 찻잎을 가는 다연, 찌꺼기를 버렸던 타호, 차 숟가락, 음식을 놓았던 방형대 등이 제작됐다. 술 또는 차를 마시는 공간을 장식하였던 꽃병과 분위기를 돋우는 악기, 탁자와 의자까지 청자들은 실로 다양하다. 오늘날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 고려청자는 전라북도 부안, 전라남도 강진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됐다.

이 작품은 완과 발, 잔 등의 일상기명과는 달리 독특한 모습을 뽐낸다. 높이 35cm되는 소담한 청자 의자로 윗면은 편평한 편이며 배가 불룩하여 안정감을 주는 구조이다. 몸체 전면을 겹쳐있는 고리무늬로 투각했으며, 넝쿨무늬가 새겨진 장식을 윗부분에 투각했다. 투각기법은 기면을 뚫기 때문에 번조 시 잘 터져버리는 단점이 있다. 이처럼 큰 투각의 청자 의자를 만든 것은 고려인들의 뛰어난 제작기술 덕분이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이며, 고리무늬 같은 경우 고려시대 목가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요나라 고분벽화 등에서 나타나는 도상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시대 차나 술을 마시는 향유 공간에서도 청자 의자를 놓고 앉아 썼을 것이다. 청자로 의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고려인들의 화려했던 생활을 짐작케 해주는 귀중한 예로 이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음료를 즐기며 바둑을 두는 등 고려 귀족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이처럼 두텁고 투각된 청자 의자 편들이 출토된 바 있으며, 따라서 이 청자도 부안 유천리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유리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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