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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고창 용산리 명문분청사기와 사기장

‘예빈’, ‘내섬’이 새겨진 분청사기 접시. 조선, 15세기 중반-16세기.
‘예빈’, ‘내섬’이 새겨진 분청사기 접시. 조선, 15세기 중반-16세기.

나는 사기장이다. 그릇을 빚는 사발대정이다. 수중군(조수)이 사토를 채취하여 그릇을 빚도록 곱게 이겨놓은 꼬박(질흙뭉치)을 물레로 돌려 차서 접시, 사발, 병 등을 만든다. 그릇을 흙판 위에 올려 그늘에서 잘 말리고 나면 굽대정(마조장)이 굽을 깎는다. 굽대정은 신통하게도 굽 안팎의 얇고 두꺼운 것을 잘도 알고서 알맞게 굽을 깎는다. 그런 다음 꾸덕꾸덕하게 적절히 마른 그릇 바깥 면에 무늬를 장식한다. 도장으로 무늬를 찍고 흰 흙을 메꿔 넣어 꽃무늬를 만들거나, 그릇 전체를 흰 흙으로 바른 후, 그 위에 춤추는 듯한 물고기 등을 그리기도 한다.

그리고 접시 안 바닥이나 그릇에 예빈시禮賓寺의 예빈, 내섬시內贍寺의 내섬 등을 찍거나 새겨 넣는데, 이것은 관청이름이다. 글자에 백토로 메꿔 넣은 것이 마치 무늬 같아 보일게다. 예빈시는 외국사절의 잔치와 왕실의 종친과 재상님들의 음식을 마련하는 관청이라고 한다. 내섬시는 궁궐 2품 이상 관리에게 술을 주고, 왜인과 야인에게 음식물을 공급하는 곳이다. 이렇게 잘 보이도록 관청의 이름을 새겨 넣은 그릇은 궁궐로 올라가는 사기그릇이다.

나는 이래 봬도 이 마을에서 궁궐에서 쓰는 사기그릇을 만드는 사기장으로 꽤나 솜씨 좋다는 말을 듣는다. 예전 태종 임금님 때 그릇에 관청 이름을 새겨 넣으라고 명하셨다고 한다(1417년). 이렇게 명하신 까닭은 그릇을 사용하는 관청을 표시하여 그릇이 도난당하는 것을 막고 관리를 잘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런 조치 후로 없어진 그릇 수를 더 구워 올리는 일이 줄어서 좀 살기 좋아졌다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지금도... 항시 봄, 가을마다 궁궐로 구워 올려 보내는 사기그릇 말고도 필요할 때마다 구워서 올려 보내는 그릇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그래도 사기그릇을 만드는 일은 고되지만 신명 난다. 이제 초벌구이 한 그릇에 유약을 씌운 후 도짐을 받쳐가며 가마에 재임한다. 드디어 불의 심판을 받을 때가 되었다. 몸을 닦고 마음을 모아 기원을 올린 후 가마에 불을 지핀다. 뜨거운 불기운이 넘실넘실 가마를 타고 올라간다. 마치 붉은 용이 하늘로 오르는 것 같다. 좀 더 가마에 장작을 때야겠다. 제발 잘 익혀져 잘생긴 사기그릇이 나오길 거듭 거듭 바라고 또 바래본다.

*조선시대 15세기 후반 고창 용산리 사기장이 궁궐에 공납하는 명문분청사기를 제작하는 과정을 가상해 구성해 본 글.

 

/김현정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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