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는 피하고 가라”지요. 후두두 뛰어든 사람들, 다리 밑이 붐빕니다. 누군가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넣습니다. 또 누군가 하염없이 허공에 눈길을 던집니다. “곳에 따라 소나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곳’을 비켜 갈 확률이 아주 낮습니다. 우산 없어 발목 잡히고 흠씬 젖은 이들, 쉼표 하나 찍습니다. 후련한 낭패입니다. 다리 난간이 꼭 필름 구멍 같습니다. 영사기를 돌립니다.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있는, 목덜미가 마냥 흰 소녀가 비켜주기를 기다립니다. 내 유년의 저 산 너머에도 마타리꽃이 피었습니다. 주머니에 가만 손을 넣어 봅니다. 아! 그런데 “이 바보” 하며 소녀가 던진 하얀 조약돌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을까요? 기억을 더듬는데, 후두두 뛰어들었던 사람들 가던 길을 갑니다. 소나기가 그쳤습니다. 소녀를 업고 건너야 하는데 개울물은 불지 않았습니다. “소나기는 쇠 잔등을 다툰다”지요. 그래요, 내 유년에는 소나기가 내리지 않았던 게 분명합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