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전 시대에 없었던 특이한 사건은 시대적 분기점이 된다. ‘스페인 독감’이 있었지만 1세기만의 일이니, ‘코로나 19’도 역사의 장에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어떻게 기록될지는 모르지만 1세기 전의 사건과 같은 색조로 기록되지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한 시대의 탄생은 꽤 복잡한 구성요소들이 녹아든 용광로에서 흘러나온 철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라는 위기의 형태에만 주목하면 안 된다. 주형틀이 아무리 달라도 ‘위기’라는 광석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 “최고의 세월이요, 또한 최악의 세월이었다. 지혜와 우둔의 시대요, 광명과 암흑의 계절이요, 신앙과 불신앙의 기간이요, 희망의 봄이요, 절망의 겨울이기도 했다. 우리들 앞에는 온갖 것들이 갖추어져 있었고, 또한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모두가 다 천국으로 곧장 연결될 것들이었으며, 지옥으로 곧장 떨어질 것들이었다.” 디킨스는 최고가 되거나 최악이 될 형질이 한 시대 안에 공존한다고 보았다. 어쩌면 같은 형질의 다른 발현일지도 모른다.
디킨스가 말한 두 도시, 런던과 파리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파리는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런던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 시간적 결과를 ‘벨 에포크’라고 불렀다. 1940년 11월 앙드레 알레오가 <라디오 파리> 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인 ‘벨 에포크’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파리의 시간을 ‘아름답고’, ‘좋은’ 시대로 만들었지만, 그 후에 어떤 시대가 이어졌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벨 에포크’는 20세기 최악의 비극인 제1차,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유럽문학의 주류 목소리는 오랫동안 1,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다루는데 바쳐졌다. 르네상스라는 위대한 인문주의를 탄생시켰다고 그토록 자부했던 유럽문화가 ‘홀로코스트’를 위시한 무차별적 살육의 역사를 낳은 것에 대해 유럽의 지성들과 작가들이 받은 충격의 여진이 매우 길었던 때문이다. 라디오>
위기는 사회구성원에게 여지가 많지 않은 선택을 강요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가장 좋은 것에서부터 가장 나쁜 것까지 탄생한다. 지금이 그런 국면이다. 문제는 위기가 아니라 위기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위기는 필연적으로 변화를 가져오는데, 그 변화는 사회구성원들을 승자와 패자로, 적응한 이들과 적응하지 못한 이들로 나눈다. 패자 혹은 적응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변화가 곧 재난이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때 주목할 것은, 변화가 반드시 선은 아니며 변화에 따르지 못한 것이 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삶은 다양해야 하고, 그 다양성은 변화가 찾아왔을 때 함께 변화하지 않겠다는 것들까지를 존중하고 포함해야 한다.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1818∼1897)의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역사를 통해 ‘이후에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혜’를 얻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이번 위기를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전보다 똑똑해지겠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지식의 축적이 모든 구성원의 삶이 더 나아지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만 지혜가 될 수 있다. 같은 위기 속에 있지만, 나라마다 다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선택과 대응이 새로운 시대를 연 ‘지혜’로 기록되고, 모두가 따르는 답이 되기를 바란다.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천세진 작가는 시집 『순간의 젤리』(천년의시작, 2016)와 『풍경도둑』(모악, 2020), 문화비평서 『어제를 표절했다』(피서산장, 2019)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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