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동네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식당을 찾아 갔는데, ‘임대’가 붙어 있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꽤 손님이 있던 곳이었고, 2년도 안 된 것 같은데 코로나에 자영업자들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니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건너편에는 새로운 베이커리 카페가 문을 열었고 어떻게 알았는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요즘 신상 카페들의 흔한 모습처럼 심플한 인테리어에 통창이 있는 공간으로, 포토존이 될 만한 곳도 따로 마련하여 셀카를 찍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인테리어 공사비로 많은 돈을 쓰며 고심 끝에 오픈했을 카페들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1년 후에 가보면 새로 개업한 카페에 밀려 있는 모습도 가끔 만나게 된다. 자본이 만든 거대한 대형 카페들도 요즘 꽤 많이 들어섰다. 동네에서 오랜 시간 커피 맛과 손님과의 신뢰에 공들이며 카페를 꾸려온 사장님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유독 카페들의 세상은 총성 없는 전쟁터 같다.
내가 운영하는 서점 양옆으로도 작은 카페가 나란히 있고, 바로 건너편에도 프랜차이즈 카페가 나란히 세 개나 서 있다. 책방 뒷골목은 카페 골목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개성있는 카페들이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결국 넓고 쾌적한 공간과 신선한 원두로 맛을 책임지는 카페들은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않은 공간은 뜸해진 발길에 살아남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카페들의 존폐 여부를 두고 사장들의 운영 능력 때문이라고 절대 말하지 못하겠다. 모든 자영업자들이 살고자 시작한 사업도 자본의 논리에 속수무책일 때도 있거니와 자본을 이기려면 24시간이 모자라게 일하거나 뛰어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미친 듯 노력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고고한 인테리어를 뽐내며 서 있는 카페들을 보고 있노라면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시작에서 어떤 공정을 바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자본주의에선 돈이 돈을 번다고 말하며 푸념하는 수밖에.
최근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지금 서 있는 그 자리, 정말 당신의 능력 때문인가?”라며 능력주의에 질문을 던졌다. 능력이 있어도 자본이 없으면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여전한 우리의 현실이고 능력이 없어도 자본이 있다면 만들어진 기회의 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도 한다. 문제는 그 성공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일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갖고 사는 일이 온전히 본인의 실력과 재능 때문이라는 믿음이 과연 맞는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사교육시장의 어마어마한 편차만 보더라도 기회의 불균형이 만들어낸 결과를 체감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낙오자’라 낙인찍히는 사람들이 과연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사는 것인지 아니면 이 사회의 공정하지 못한 시스템이 누군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우리는 눈여겨 봐야한다는 이야기다. 보통 성공을 하게 되면 스스로의 노력 때문이라는 착각에 도취되어 다른 이들이 걷는 길을 보지 않으려 한다. 성공에도 윤리가 있다면 문을 닫은 가게들을 보며 살아남지 못한 이유를 무능력으로 치부하지 말자. 그들에게는 더 적은 기회와 더 적은 자본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때로 알아줘야 한다. 무한 경쟁 속에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남지 못한 자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지 않을까?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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