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희 썰지연구소 소장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는 전북지역 문화·예술계 전문가들이 문화 담론을 이끌어 나가는 공간입니다. 올해는 설지희 썰지연구소 소장, 김효원 교동미술관 학예사가 참여해 무형문화재와 장인들, 지역 작가들의 삶과 예술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로컬과 문화유산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전주의 문학인, 예술가, 운동가들의 사랑방이며 요즘 청춘들도 방문하는 곳이 있다. ‘맛있고 멋있는 전주 각계 사람들’이 2차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신명난 가락이 펼쳐지는 곳.
전주 다가동의 ‘새벽강’이다. 30년이 흘렀다. 둥지를 옮기기도 했다. 그 강은 한옥거리, 동문거리, 서점거리, 차이나타운, 웨리단길 등 다양한 이름들이 흘러있다. 2019년, 내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새벽강의 장면, 소리, 맛이 좋아 문득 문득 그곳을 찾아간다.
“단촐한 식탁, 주인과 손님 구별이 없는 서빙 체제, 지역 예술인들의 손때 묻은 작품, 기타와 이런 저런 악기들.” - 海霧, ‘전주 새벽강’, 다음 블로그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 2009.02.13. 봐라,>
새벽강을 로컬크리에이터라 할 수 있을까. 무형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을까. 제도적 정의를 살피면 두 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반면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새벽강에 없는가? 그렇게 물어본다면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제도화 이후 지정이 야기한 모습
중소벤처기업부는 ‘로컬크리에이터란 지역의 자연환경, 문화적 자산을 소재로 창의성과 혁신을 통해 사업적 가치를 창출하는 창업가’라고 정의한다. 유네스코에서는 ‘무형문화유산이라 함은 공동체, 집단 및 개인들이 그들의 문화유산의 일부분으로 인식하는 실행, 표출, 표현, 지식 및 기술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전달 도구, 사물, 유물 및 문화 공간 모두’라고 정의한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현대사회 획일화에 관한 대안이지만 개념과 영역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출발은 같았다. 1920년대부터 근대(modern)의 반대 의미로 전통(tradition), 향토(local), 민속(folk)이 취급되었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기적 의도가 다분히 첨가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은 과거의 끈을 삭제하였다. 1970년대 초부터 시행된 새마을 운동을 필두로 새로운 문화와 산업, 이데올로기가 삽입되었다. 우린 더 이상 한복 입은 할머니의 모습이나 초가집의 풍경을 추억하지 못하며, 그리워하지 못한다. 현대사회의 키워드인 경쟁과 비교, 성장의 지향점에서 지방, 향토, 문화유산은 항상 열위를 차지한다.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 보존 및 활용으로 국민의 문화적 향상 도모와 인류문화 발전 기여를 목적하며 1962년에 제정되었다. 이른 제도화는 무형문화재 지정에서 문제가 일어났다. 무형문화재 개념을 채 정립하기 전에 무형문화재를 지정되면서 일부 오류가 생겼다. 역량 있는 장인이 있더라도 마땅한 심사위원이 부족하거나, 충분한 검증이 안 된 채 지정하였다. 고령의 실기자임에도 종목의 역사적 타당성을 기술하지 못하면 탈락하기도 했다.
소목장(小木匠)은 목조건축물을 제외한 목가구를 제작하는 장인이다. 단연 소목장의 영역에는 우리의 밥상이었던 소반도 포함된다. 그러나 종목상에는 소목장과 소반장이 별도로 지정되어 있다. 또는 조선시대에는 활을 만드는 궁인(弓人)과 화살을 제작하는 시인(矢人)이 있다. 현재 무형문화재로는 궁시장(弓矢匠)이라 하여 통합 지정하였다.
변수들은 왜 나타날까. 바로 제도화로 인한 ‘지정’ 때문이다. 전통사회의 장인들은 당시 기술직들이었다. 지금 우리 곳곳에 볼 수 있는 엔지니어, 제조업자, 공예가의 과거 버전이다. 그들은 직업으로서 일상 속에 살았다. 직업을 바꾸거나 직장을 옮기기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그런 유연한 삶 속에 존재하던 일이 ‘제도와 지정’을 거치며 고정되었다.
무형문화재 제도의 시작은 삶 속에서 시들지 말고 더욱 힘찬 날개를 펼치라는 조력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제도가 설립하고 사라지지 않도록 빠른 속도로 지정이 이뤄졌다. 씨실과 날줄로 엮어있던 생태계는 사라졌고 무형문화재 종목만 남았고 바라만 보았다. 지정 이후에는 무형문화재에 관한 보도와 기록화에 열을 쏟는다. 그 사이 향유했던 문화는 잊혀져갔다.
우리가 꿈꾸는 생태계를 끊임없이 추구하자
활성화는 사회문화적 맥락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가령 전북 선자장들이 여럿 존재하는 것은 전북 선비와 예인들이 있었던 과거와 국악인과 한학자들의 오늘 덕분이다. 만신들이 건재한 이유는 여전히 가정의 안녕을 위해 굿판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창작자와 향유자, 그 궤도에 어느 하나 빠지면 우리는 영영 이 멋진 풍경들을 마주할 수 없다.
제도화는 누구에게 향해 있는가? 무엇을 위해 그들을 지정하는가?
그 답은 우리 모두가 꿈꾸는 건강한 생태계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로컬과 문화유산의 담론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과 함께한다. 일반(一般)에 반하는 도전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윗세대가 성취한 모더니즘의 결과에 이면을 찾는 중이다. 인생의 정답이 정해져 있고, 한 우물만 파는 것이 옳다고 천명하는 부모님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일반이 말하는 정답. 그 바깥에서 새로운 답을 찾는 여정이기에 ‘모호함’을 동반자로 둘 수밖에 없다. 코스가 정해진 깃발여행이 아닌 우연한 즐거움이 있는 배낭여행이기 때문이다.
로컬크리에이터과 문화유산에 관해 계속해서 새로운 대답들이 쏟아질 것이다. 축적의 시간이다. 우리는 그 시간을 즐겨야 한다. 더욱 질문해야 한다. 터전과 제도 사이에 끊임없이 짚어봐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생태계 속에 누가 향유하고 즐기고 있는지 끊임없이 상상하자.
그렇게 正과 反이 충분히 소화되어 다시 合이 되는 어느 날을 기약한다. /설지희 썰지연구소 소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