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 사회활동가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 / 나는 매 순간 변해왔다.”
TV프로그램 ’놀면뭐하니?‘의 유산슬을 시작으로 부캐가 유행처럼 번져가는 모습을 보며 70개가 넘는 이명(異名)을 사용했던 페르난두 페소아가 떠오른다. 그는 필명이 아닌 각각의 이명으로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글과 시를 발표한 포르투갈의 시인이다. 다양한 일들을 고민하고 시도하며 여러 영역의 역할 맡고 있는 요즈음, 사람들 앞에 서서 나를 설명해야 할 때면 페소아의 시가 큰 위로가 된다.
작년 12월 끄트머리에 사회혁신센터의 계약기간을 마치고 직업이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뚜렷하게 갖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설명하는 자리가 생기면 고민부터 앞섰다. 이 고민은 두 가지 관점에서 비롯했다. 첫째는 나의 주관보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어주고픈 습성 덕분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깊은 관심과 이해를 위해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간단한 정보로 빠르게 나를 판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 나 또한 상대방이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한 답을 주고 싶었다. 어디서 시작된 강박인지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설명이 ‘간단’하고 ‘명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내가 지금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는 일들이 생계유지를 위한 또는 생계유지를 넘어서 제대로 된 수익을 만들기 위한 일이 아니었기에 직업을 염두하고 하는 질문에 직업 다운 답변이 아닌 거 같아서 위축되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렇다. 요즘의 내가 하는 일들은 ‘간단’하고 ‘명료’하지 않았고, 생계유지를 위해 시작한 일도 아니었기에 답변으로서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위축됐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위축감은 밖으로부터 시작해 내 안까지 들어와 어느새 나를 갉아먹곤 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간단한 답변에 대부분은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일이야?’, ‘그래서 그게 뭔데?’ 이어서 나에게 허락되는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충실하게 부연 설명을 하면 대부분은 ‘신기하다’, ‘대단하다‘ 정도의 피상적인 피드백을 보낸다.
결국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역할로서 설명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준)둥근숲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전주달팽이협동조합 이사장, 우깨컴퍼니 이사, 불모지장 기획자, 간람록 대표, 활동가 등이 있다. 이는 역할일 뿐 각각의 역할에 있어서 매번 새로운 관점과 시선으로 기획과 활동, 인연이 만들어져 새로운 세상을 구축해가고 있음에 대해서는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예를 들어 현재 살고 있는 전주달팽이집에서부터 시작한 전주달팽이협동조합은 함께 사는 집(사람들은 이를 쉐어하우스라고 부른다)을 통해서 청년들의 편안(편하고 걱정없이 좋음)하고 지속(어떤 상태가 오래 계속됨)적인 정주(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삶)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주거를 기반으로 한 청년활동그룹이다. 남은 역항을 다 나열하고 프로젝트까지 설명하면 글을 마치지 못한다.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각각의 일이 다 다른 방향과 형식을 갖고 있고, 함께 하는 사람들도 다 다르다면 페소아의 시 구절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낯설게 나는 읽어나간다/ 마치 페이지처럼, 나 자신을/ 다가올 것을 예상치 못하면서/ 지나가버린 건 잊어가면서/ 읽은 것을 귀퉁이에 적으면서/ 느꼈다고 생각한 것을/ 다시 읽어보고는 말한다/ 이게 나였어?” 자기 자신의 수많은 페이지를 만들어가자. 사람들은 읽고 싶은 페이지를 펼쳐보면 될 일이다. /정은실 사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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