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천
울도 담도 없는 산사에 들렸다. 나는 빛바랜 일상이 이어질 때면 가끔 산을 찾는다. 깊은 산에는 고요한 산사와 오래된 풍경이 있다. 그 풍경 속에는 문명에서 멀어진 태고의 길이 있다. 그 길은 흙에 덮여 보이지 않는 인고의 사연도 알고 있을 듯하다. 골짜기를 따라 암벽을 끼고 있는 초입에 들어서면 누가 만들다 버려둔 듯한 석상이 바위너설 아래 놓여 있다.
다가가 보니 코가 납작한 얼굴, 그 옆에는 입을 해벌리고 웃는 모습. 만들다 만 듯 투박한 돌부처들의 순박한 인상이다. 불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엉성하다. 오다가다 지나며 심심풀이로 새겨 놓은 자화상들일까. 구름이 머물다 간다는 이곳 ‘운주사’는 입구부터 다른 산사 달리 새로운 시대를 열밍하는 누가 장난을 친 듯 그냥 맘내키는 대로 배치한 사찰이었다.
울타리와 천왕문도 없이 구층석탑이 입구에서 부터 우리를 맞이 했다. 그런 무질서가 묘하게 이곳 지형과 어우러져 신비감을 자아낸다. 이곳은 가람을 둘러보는 것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불상과 탑을 보러 발품을 팔아야 했다. 에움길을 돌자 절벽이 연이어 나타났다. 큰 바위에 상형문자처럼 선이 그어져서 세세히 살펴보니 마애불이다. 긴 세월 비바람에 마모되어 선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시늉만의 선으로 그린 것 같은데 그나마 코와 귀가 살아있어 중생의 소리를 귀담아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운주사는 곳곳에 보기 드문 원형 탑이 많다. 대웅전 앞의 석탑은 위층이 많이 부서져 내려앉아 4층 정도만 남아 있다. 산중의 탑은 세월 따라 흘러내리는 모래시계로 부서진 탑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능선 아래 널따란 너럭바위에 두 개의 와불이 세월을 베고 누워 있었다. 이 와볼을 일으켜 세우면 모두가 평등한 미륵 세상이 온다는 설이 있다. 정말로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산길을 휘둘아 가자 큰 바위아래 비를 피해 있는 듯한 석불이 보였다. 이곳은 어디를 가든 불상이 수시로 나타난다. 선만 남아 있는 눈 속엔 미륵의 세상이 가물가물 사라지고, 귓가에는 지난날 서러운 목소리가 가뭇없이 떨어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운주사는 미륵 세계를 염원하는 중생들의 안타움이 가득한 곳이다.
고려 초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풍수지리상 우리나라는 배 모양인데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아 배의 중심인 국토의 중앙 화순 땅에 천불천탑을 세워 중심을 잡으려 했다고 전한다. 이곳은 그 옛날 기댈 곳 없는 백성들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찾았던 곳이다. 가엾은 중생들의 슬픈 신화가 구석구석 뿌리 내리고 있다. 석불은 이제 눈멀고 귀가 먹었다. 부서져 내린 입에 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흙이었다가 암석이 되고 들부처였다가 바람에 깎이어 다시 흙이 되어가는 블상들. 석상의 눈과 귀가 부서지듯이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흙으로 돌아가리. 그 흙이 다시 돌이 되면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이 다시 모여 그 옛날처럼 소원을 담아 만들지도 모른다. 내리막길에 하늘가 흰 구름이 탑 위로 지나는 모습은, 구름이 머무는 운주사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천년 세월의 흔적을 찾아 느릿하게 오래된 풍경 속으로 빠져든 하루였다. /박일천
박일천은 수필 전문지 ‘에세이스트’로 등단하여 <토지문학 수필부문 대상> 을 수상했다. 한국문협 회원, 샘문학회장으로 활동하며 수필집 <바다에 물든 태양> , <달궁에 빠지다> 가 있다. 달궁에> 바다에> 토지문학>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