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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의 달 1월(January)을 맞이하며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임인년(任寅年)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편치 않다. 코로나가 몰고 온 암운 탓이리라. 해마다 이맘때면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었다. 벽걸이 달력의 12월과 내년 1월을 한꺼번에 훑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야누스를 생각한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 와 함께다. 영화는 간접화법으로 야누스에 대해 설명한다. ‘1월(January)이란 단어의 어원이 야누스야. 야누스 신의 이름에서 온 거지. 야누스는 앞뒤로 얼굴이 하나씩 있어. 늘 양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두 개의 시선 사이에서 괴로워하지. 1월은 새해를 바라보기도 하고, 지난해를 바라보기도 해.’

영화의 배경은 야누스 섬이고, 섬 위에 우뚝 솟은 등대는 불빛으로 형상화된 앞뒤 얼굴로 양쪽 바다를 비춘다. 여전히 삶을 이어 가야 하기에 폭풍우 몰아치는 밤에도 항해하는 배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쟁영웅 ‘톰(마이클 패스벤더 분)’은 ‘야누스’라는 이름을 가진 외딴섬 등대지기를 자원한다. 보급선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어버린 그에게 어느 날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 분)’이란 여인이 나타나 결혼에 골인한다. 꿈같이 행복한 시간도 잠시. 이자벨은 두 번의 임신에 두 번 다 유산하는 아픔을 겪는다. 어느 날 파도에 이끌려 한 척의 쪽배가 섬에 당도한다. 배에는 젊은 남자의 시신과 울고 있는 아이가 타고 있다. 상부에 보고하려는 톰에게 이자벨이 매달린다. 그냥 키우자는 것이다. 부부는 자기들이 출산한 것처럼 아이를 키운다.

몇 년 후 육지에 간 둘은 아이 친엄마인 ‘한나’의 존재를 알게 된다. 톰은 이자벨에게 말하지 않고 아이 딸랑이를 한나의 집에 슬그머니 놓고 나온다. 이게 증거가 되어 투옥된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날 사랑하지 않는 거지. 살아있는 한 절대 용서 못 해.” 이자벨은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남자는 섬에 도착할 때 사체였어요.” 이 한 마디면 톰은 풀려나겠지만 이자벨은 말하지 않는다. 부부의 고뇌가 깊어진다.

January는 ‘야뉴스에 관한 것’이란 뜻의 라틴어 야뉴아리우스Januarius에서 왔다. 야뉴스는 문의 신이다. 안쪽과 바깥쪽을 동일시하는 신은 한 손에 열쇠를 들고 있다. 열쇠는 문을 열고 잠그는 기능이 있다.

“예쁜 아이지만 우리 아이가 아니야. 보고하고 정당하게 입양 받아 기릅시다.” 톰의 제안에 이자벨은 “누가 무인도 등대에 아기를 보내?”라며 고집을 피웠다. 이때부터 이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게 된다.

한쪽은 미소를 띠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일그러진 양쪽 얼굴. 언제부터인가 표리부동과 이중성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슬픈 야누스. 로마인이 가장 숭배했다는 야누스 신은 다른 문화와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융합하는 정신적 지주였다고 전해진다.

영화 <쿵푸팬더> 에서 쿵푸 마스터인 국숫집 아들 팬더 ‘포’와 ‘우그웨이’ 대 사부가 나누던 대화가 떠오른다. ‘시푸’ 사부에게 지친 포가 “쿵푸 그만두고 국수나 팔러 갈까 봐요.”라고 하자 대 사부가 말한다. “포기냐 전진이냐, 국수냐 쿵푸냐. 너는 과거와 미래에 너무 집착하고 있구나.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아무도 몰라. 하지만 오늘은 선물이지. 선물을 소중하게 다루렴.” 포는 쿵푸 최고수가 되어 악을 타도한다.

잔잔한 쪽빛 바다만 희구하는 나의 집착이 희망으로 부푼 마음에 몽니를 부리고 있다.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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