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손대지 않은 보물 상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근처 보육원 아동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그래서 보육원 아동이 한 반에 한두 명씩 있는데 5학년 때 우리 반도 그랬다. 우리 반의 그 애는 난폭하기로 소문난 남자아이였다. 그 애는 화가 나면 주먹으로 책상을 치거나 자기 비위를 거스르는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다. 그 애 때문에 교실은 항상 공포 분위기였다.
하루는 반장이 그 애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날부터 정말이지 나지 않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 냄새를 아이들은 ‘고아 냄새’라고 명명했다. 누군가 “야! 어디서 고아 냄새 안 나냐?”하면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그 아이를 쳐다봤다. 처음에는 자기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냐며 바락바락 소리치던 아이도 시간이 가면서 ‘냄새’라는 단어만 들려도 잔뜩 움츠 러들었다. ‘고아 냄새’라는 낙인은 졸업할 때까지 그 아이를 졸졸 따라다녔다.
윤일호 작가의 <가만두지 않을 거야! 왜 부들이는 자꾸만 화가 날까?/내일을 여는 책>를 읽는 내내 그 아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주인공 부들이와 그 아이가 닮은 점이 많아서였을까?
주인공 부들이는 분노가 치밀면 나이, 성별 불문하고 무기를 들고 위협하거나 거친 말을 가감 없이 내뱉는다. 부들이가 삼각자를 들고 6학년 형을 쫓아가며 “죽여 버리고 말 거야.”하고 외치는 첫 장면은 두렵기까지 하다.
그런 부들이에게 지금껏 만난 어른과는 다른 어른이 나타난다. 바로 4학년 담임 킹콩 선생님이다. 킹콩 선생님은 교실 바닥에 누런 가래침을 뱉고, 수업 시간에 대놓고 잠을 자고, 지각을 해도 당당한 부들이를 야단치지 않았다. 부들이는 그런 킹콩 선생님이 의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 자신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지 않은 어른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킹콩 선생님도 부들이의 돌발 행동이 여간 고민스러운 게 아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부들이를 야단치거나 벌을 줄 수는 없었다. 부들이 문제가 부들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혼을 내는 대신 부들이 가슴에 쌓인 분노를 들여다보려 노력했다. 자기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가슴 속 아픔을 글로 표현하도록 도왔고, 부들이만 집으로 초대해 선생님이 특별하게 아끼는 제자라고 생각하게 했다.
마침내 구제 불능, 문제아 부들이가 변했다. 동화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런 변화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잘못을 잘못으로 대하기보다 서툰 자기표현으로 받아들이고 다양한 각도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면 말이다.
“눈높이를 맞추고 귀 기울이다 보면 비로소 보이게 됩니다. 인정해 주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조금씩 가능성과 잠재력을 알게 되겠지요.”라는 윤일호 작가의 말을 끝으로 이 책을 권한다. 더불어 아이들은 누구도 손대지 않은 보물 상자라는 걸 기억하자. 열리지 않은 보물 상자 안은 반짝반짝한 미래로 가득할 테니.
/김근혜 동화작가
김근혜 동화작가는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선물> 로 등단했다. 발간한 책으로는 동화 <제롬랜드의 비밀>, <나는 나야!>, <봉주르 요리 교실 실종사건> 등이 있다. 현재 전주 최명희문학관 상주 작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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