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부여해도 안 팔리면 쓸모없어
가격 뻥튀기·가짜 NFT·먹튀도 극성
건강한 시장 위한 협업체계 모색을
“그거 돈 됩니까” 지난해 방영된 JTBC 금토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이 영화산업을 선택한 4남 진윤기를 핀잔주는 말이다.
자본주의 민낯을 드러내 꼬집는 이 대사는 갈 길 먼 전북 NFT 시장에서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첫 번째 질문이 될 수 있다. '이거 팔릴까, 소장가치 있을까' 등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겠다. '흥할지, 망할지' 예측불가한 NFT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으로 '소장가치', '시장 건전성', '협업체계 필요성' 등을 짚었다.
△소장하고 싶은 가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뭉크의 '절규', 피카소의 '게르니카', 클림트의 '키스'…. 특히 지난 2017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031만 달러(한화 약 5655억 원)에 낙찰,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됐지만 행방이 묘연해진 다빈치의 '구세주'.
이런 불멸의 명작들을 소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상상만으로 즐거운 일이다.
NFT 시장과 실물 예술시장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그렸는가' 그리고 시대적 작품성과 강렬한 희소성이 소장가치의 주요 척도라는 점에서 그렇다. NFT 구매는 우표나 기념주화를 수집하는 행위와도 닮았다. 추후 값이 오르기를 기대하거나 '마음 끌려서', '팬심 때문에' 등 구매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누구나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NFT에 소장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어찌보면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처럼 '이름을 불러 주는 일'과 같다. NFT는 NFT에 맞는 가치부여가 필요하다. 일테면 컬렉션이나 콜라보 작업.
그러나 가치를 부여하더라도 팔리지 않는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데이터 쪼가리'에 그친다.
최용석 전북콘텐츠융합진흥원장은 "NFT는 디지털저작권·소유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게 거래가 됐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등과 추진하는 팔복예술공장 메타버스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구상 중이다"고 밝혔다.
△믿을만한 거래, 건강한 시장 조성 과제
10년 전 세계 최초 NFT를 만든 사람은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인 미국 뉴욕대의 케빈 맥코이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디지털 작품을 팔 수 있게 하자'는 게 출발점이었다고. 그런 그가 2021년 "예술가들에게 힘을 불어넣겠다는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상업적 욕망으로 가득찬 큰 거품만 만들어졌을 뿐"이라며 분노를 토했다.
'예술'은 사라지고 '가격 벙튀기'만 난무하는 도 넘은 장삿속을 질타한 것.
더 심각한 문제는 '가짜 NFT' 사기까지 판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거래 플랫폼에서 버젓이 민팅·유통되는가짜에 속고 피해를 보는 구매자들이 적지 않다. 수법도 다양해 신중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고, 적절한 피해구제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여기에 투자금을 모은 뒤 먹튀하는 '러그풀(Rug-pull)' 사기가 늘고 있으며, 해커들의 먹잇감이 되어 '피'를 흘리기도 한다. 탈취 금액이 1400억을 넘었다는 등 최근 2년새 관련 피해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돈만 벌면 그만'인 투기장, 더 이상 믿지 못할 위험한 시장이라면 생산자와 구매자 모두 등돌릴 수밖에 없다.
△'사람이 먼저'… 참여자 협업체계 구축 고민 필요
NFT 시장의 신뢰성을 회복하고 작품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국가 주도로 엄격한 규제장치를 만드는 게 먼저일까. 그렇지 않다. NFT는 '탈중앙화와 투명성'이라는 '블록체인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북과 같이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황무지라면, 무분별한 규제보다는 성장을 돕는 일이 앞서야 한다.
백승관 전북미술협회장은 "몇몇 지역작가들이 서울 등에서 NFT를 만드는 사례가 있었다. 오는 18일 열리는 협회 정기총회에서 NFT업계 관계자를 초청해 설명회를 진행할 계획이다"며 "무엇보다 지역작가들이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하고 실력을 펼칠 수 있도록 관계 기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북도 등 자치단체는 NFT를 육성해야 할 새 문화산업영역으로 보고, 예술인 복지증진 차원에서 다양한 지원사업을 모색할 수 있다. NFT 맞춤형 창작을 제안하거나 예술인이 직접 민팅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NFT를 미술작품에 한정할 이유는 없다. 전주한옥마을·한복 등 전북의 문화유산은 풍부하며 무한한 가치를 숨기고 있다.
지난 6일 '지역 문화유산 등을 NFT로 제작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대구시의 사례는 주목할만하다. 자치단체, 전북문화관광재단, 예술계 등이 힘을 모으고 함께 고민할 대목이다.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은 "예술은 사람이 하는 것. 철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NFT 관련 주체들의 협업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무리 혁명적 신기술이 밀려온다 하더라도, 결국 '사람들이 먼저'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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