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공정이다. 사실 공정은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가치 논쟁 대상이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배분적 정의로부터,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창한 공리주의, 칸트의 도덕주의까지 많은 논의가 있었다. 무엇이 공정인가는 결국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이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공정은 무엇일까?
경쟁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누구에게나 균등한 경쟁의 기회가 주어지고 과정이 공정하다면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른 차등적인 대우는 정의롭다는 견해다. 이는 로버트 노직의 자유주의적 정의론에 가깝다. 정부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경쟁의 공정성을 보장한다.
새겨보면 과정의 공정성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불공정한 게임을 한다면 그 결과를 누가 수용할 것인가. MZ세대에게 공정이 뜨거운 이슈가 되는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들은 극심한 경쟁을 겪고 있어서 개인의 능력 이외의 요인이 경쟁과정에 작용하게 되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평창동계올림픽 업무를 담당했을 때 자원봉사자의 처우와 관련하여 이를 직접 경험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주의(meritocracy)가 정말 공정한가? 두 가지 반론이 있다. 첫째는 출발선이 같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능력주의가 진실로 공정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가진 여건이 같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학비·생활비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된다. 반면에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난 학생은 주경야독을 해야 한다. 능력과 재능이 비슷하여도 가진 게 불균등하기 때문에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로널드 드워킨은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출발선에서 경쟁의 수단이 되는 자원을 평등하게 해주는 것을 공정이라고 보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불운에 대해 적절히 보상하여 같은 조건으로 만든 후에 경쟁을 시작해야 비로소 공정하다는 것이다. 능력주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보상은 특별한 대우라고 할 수 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은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소득순위 하위권에 장학금을 주고, 인구 소멸지역에 대한 특별한 지원 등이 예다.
하지만 기회를 균등하게 주고, 출발선상의 불평등을 보정한다 하더라도 개인적 성취는 차이가 난다. 결과의 불평등이 심할 때는 내적 통합이 깨지므로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두 번째 반론이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될 때만 정당하다고 했다.
이보다 더 진전된 논의는 아이리스 영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녀는 공정성을 약간 위배하더라도 소수자우대․여성우대정책과 같이 적극적으로 결과의 불평등을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계속 어려운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경쟁에서 진 사람들도 배려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경쟁의 결과로 발생한 불평등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영(Young)식의 정책도 필요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의를 종합해보면 공정은 그 차원이 다양하므로 반드시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금 출발하는 공정이라는 열차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정의로운 인간, 즉 호모 주리디쿠스(Homo Juridicus)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배려와 공감, 인정과 양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공정한 잣대를 만들어나가는 어렵지만 꼭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김광휘 행정안전부 지역경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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