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상담소 “강간법 개정·관련법 추가 신설 등 필요”
법조계 일각 "상호성관계 후 고소하는 상황 배제 못해"
성범죄 피해를 신고해도 ‘불송치’ 처분 결정을 받은 주된 이유가 ‘피해자다움’이 없다는 통념으로 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다움이란 성범죄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의 정형화된 행동과 언어를 규정짓는 행위를 말하는 데, 성범죄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기억하기도 싫은 범죄 피해를 떠올리며 ‘피해자다움’을 입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22년에 진행된 1387건(537명)의 상담을 분석해 발표한 ‘2022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 및 상담 동향 분석'자료에 따르면 경찰에서 불송치 처분 통지를 받아 상담을 요청한 내담자는 34명으로 이 중 52.9%인 18명이 강간 피해자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불송치 처분 통지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결과, 피해자가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경우 △가해자와 연락을 주고받은 경우 △피해 장소를 바로 벗어나거나 적극적으로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경우 등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으로 인해 불송치 처분 결정을 받은 건수는 32.4%인 11건이었다.
또 피해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송치된 건도 18.4%인 9건이었다.
전북에서 활동하는 성폭력 상담 관계자들도 도내 강간 및 유사 강간 피해자들이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으로 인해 불송치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밝히고 있다.
사단법인 성폭력예방치료센터 부설 전주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2022년 상담통계 현황’에 따르면 강간 및 유사강간 피해자 상담 건수는 1111건이다. 이 중 불송치 돼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가 송치된 후 상담을 받는 건수보다 훨씬 많다고 상담소 측은 설명했다.
권지현 전주성폭력상담소장은 현행 형법상 강간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었는지가 아닌 폭행·협박 유무로 판단하기 때문에 불송치 처분율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권 소장은 “피해자라면 거칠게 저항해야 한다는 ‘피해자다움’ 같은 선입견이 문제다”며 “실제 사례로 수사기관에서 ‘자신 같으면 안 그랬을 거다’라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선입견을 품고 수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해자와 단 둘이 있고 목숨이 위협적인 상황에서 저항을 할 수 있는 피해자는 드물다”며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저항 정도에만 집중하다 보면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실질적인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에서는 관련 사례들을 취합하고, 강간죄 개정 및 관련법 추가 신설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반면, 현행 형법상 강간죄를 개정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재 피해자가 겪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개선책이 마련돼야 하지만, 합의 하에 성관계 후 무고하는 사례도 있는 만큼 악용되는 경우를 배제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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