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비가 내린다. 어수선한 마음이 한줄기 비에 젖는다. 유리창이 빗물에 씻겨 때를 한 꺼풀 벗겨낸 듯 시원해졌다. 죽었던 세포가 하나, 둘 되살아나 대지를 뚫고 나오는 들풀처럼 푸릇한 기운이 스민다. 비가 나를 보고 나도 비를 본다. 비와는 같은 시간의 동승자다.
변방에서 머무는 글보다는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일에 자꾸만 빠져들었다. 글 쓰느라 밤을 지새운 기억보다 바느질로 아침을 맞은 일이 생생하다. 날밤을 새워도 즐거움이 마냥 솟았다. 그 깊고 푸른 시간은 들뜨고, 뿌듯하고 기쁨으로 충만했다. 신은 누구에게나 하나씩의 재주를 준다는데, 어리석은 나는 신이 귀띔도 해주지 않고 나침반도 주지 않았다고 늘 엉두덜거렸다. 바느질이 나에게 신의 선물인지를 몰랐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때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나름 보편적 시기가 있는 것이다. 못 이룬 자의 변명이고 핑계지만 시기를 놓쳐버리고 환경 탓을 했다. 소질에 좋아하기까지 한 패션 쪽 일을 했더라면 넓은 광장에서 한몫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성싶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두껍다.
사람이란 나이 들수록 반추라는 걸 하게 된다. 삶의 복기다. 만일 그때 이랬더라면 이러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았다면 이랬을까 후회 비스듬한 것으로 상상한다. ‘만약’은 아쉬움이 깔린 가정일 뿐, 현재가 될 수 없다. 돌릴 수 없는 if다. 지나간 시간 속에 있고, 일종의 소망이고, 마기말로다.
때를 놓친 사람이 늦깎이로 공부해서 전문가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을 본다. 부럽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되지 못한 세월에 대한 통증일까. 화가도, 의사도, 선생님도, 음악가도, 공무원도 때로는 엉뚱하게도 모델이 되어보는 꿈을 꾸어보기도 한다. 현재보다는 유려할 것 같다. 그러나, 화가는 감각이 없을뿐더러 초등학교 2학년 손녀딸보다 그림을 못 그리니 얼토당토않고, 큰딸이 의사니까 유전인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닐 테지만 공부를 못해 의사도 어불성설이다.
둘째 딸처럼 음악을 한다 생각하면 행복하겠지만 절대음감이 없는 데다 악기 하나 다루지 못한 사람이 어찌 음악을 할 수 있겠는가. 다 늙어 버린 지금에도 남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할뿐더러 가르치는 테크닉 또한 젬병이니 선생님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좋아하고 자신이 있는 것은 바느질이다.
그런데, 말이 그렇지 그것을 업으로 삼기에는 고잔잔하여 끈기 없는 나는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것도 저것도 내겐 다 오리무중이다. 세상사 다지금 몫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만약’은 나에게 막연한 아쉬움의 탐욕일 뿐이다. 못 하는 영역을 뛰어넘으려는 하나의 욕망에 불과함이다.
그렇다. 나는 능력 밖을 탐하는 욕망 도둑이다. 가시에 찔린 상처도 얼룩도 없이 편안하게 취하려만 했다. 전문분야의 고지는 복권 당첨과 같은 요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 피어난 꽃이요,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목마른데도 사막을 건너지 않고 오아시스만 찾는 꼴이다. 불꽃 튀는 정열 한번 쏟아내지 않으면서 부러워만 했다.
이쯤에서 생각해보면 재주는 없지만 그나마 글쓰기를 잘한 것 같다. 달려보자. 이 글 저 글 주전부리를 해서라도 배부른 한 편의 글을 향해 질주하자. 나의 생에 많은 것을 지배하는 글쓰기, 밖에서 서성거리는 글을 안으로 끌어들여 옹골진 글, 문자향 펄펄 날리는 문장 하나만이라도 괜찮게 써보자. 그러면 못다 한 사랑의 갈증에도 초록비가 내려앉겠지.
△이정숙 수필가는 국제펜클럽 전북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신곡문학상, 작촌예술문학상, 온글문학상, 한글사랑 유공자 전라북도지사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지금은 노랑신호등>, <내 안의 어처구니>, <꽃잎에 데다>,<계단에서 만난 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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