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서는 찹쌀이 없어서 멥쌀에 누룩을 섞어서 술을 만드는데, 빛깔이 짙고 맛이 진해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 왕이 마시는 것을 양온이라고 하는데 좌고에 보관하는 맑은 법주이다.” <선화봉사고려도경>은 송나라 사신이 바라본 고려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고려시대 '왕의 술'의 단면을 엿볼 수 있어서 더욱더 흥미롭다. 이 기록을 통해서 고려시대에 왕이 마시는 술을 빚던 곳은 ‘양온서’였고 왕이 마시던 술은 ‘맑은 법주’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등의 기록을 살펴보면 왕의 술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향온, 홍소주, 홍로주’이다. “향온주는 바로 내간에서 약으로 복용하는 것이므로 예전부터 아무리 흉년을 만나더라도 감히 정파하지 못했습니다.(<승정원일기>, 인조 7년 7월 11일).“ 인조 7년 기록은 ‘향온주’가 왜 대왕대비에게 정기적으로 올려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진 영조에게 성덕윤은 ”소주를 조금 드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라고 권한다. 2개의 사료는 마치 예전에 대학교 선배님들이 감기가 걸려 술을 못 마신다고 하는 후배에게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면 싹다 낫는다.’라며 짖궂게 건넨 농담 섞인 진담과 맥락을 같이한다. 알코올의 약성을 활용해 조선의 왕은 아픈 신하에게 소주를 하사하기도 했다. 술이 약과 같이 쓰였던 조선시대 ‘왕의 술’의 일면이다.
금주령에 진심이었던 영조가 조선팔도에 금주령을 내려놓고 막상 본인은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는 소문에 본인은 평상시에 물을 마시는 일이 없고 생맥산을 복용하는데 오미자 때문에 색이 붉게 보여 소주를 마셨다고 오해하는 거라는 에피소드 속 ‘홍소주’는 영조의 궁색한 변명 속에 등장하는 왕의 술이다. 영조 31년 9월 8일 제사와 연례에 예주를 쓰게 하고, 엄격히 금한 술 ‘홍로(紅露)·백로(白露)’도 왕의 술이다.
2000년대 후반 막걸리 붐이 일으킨 나비효과는 실로 놀랍다. 술을 빚되 타인에게 양도할 수는 없었던 가양주의 산업화가 가능해지고 이제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꿈을 꾸고 있다. 훌륭한 프리미엄 가양주들이 정기구독서비스나 전통주 보틀샵 등을 통해 소비자와 만나고 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스토리텔링일 것이다. 일제강점기에서 가양주산업화까지 걸린 시간이 약 100여 년이었으니 그 시간 속에서 사라진 이야기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명주로 자리매김하고 각국으로 뻗어나간 술들은 각각 오랜 역사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래서 그 술들은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문화’이다. 지난해 전주시는 향후 10년간 전주의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 관광 기반을 마련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바로 후백제의 왕도이자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전주시가 마련한 ‘왕의 궁원프로젝트’이다. 전주전통술박물관은 그간의 인문학 연구를 집성해 하반기에 ‘왕의 술과 술잔 복원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한잔에 담긴 문화’로써의 가치! 그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왕의 술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문화의 힘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부디 조선왕조의 발상지 전주시에서 현대에 되살아난 왕의 술이 한국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가 새로운 K-컬쳐로 자리잡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박소영 전주전통술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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