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임실지역 3.1운동 재조명
3.1만세운동 10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전북일보사와 JTV전주방송, 사선문화제전위 및 (사)독립운동가 박준승 선생 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박준승 선생 추모 및 특별 강연 토론회가 지난 15일 임실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사선문화제전위 양영두 위원장은 “조국의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대대로 이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전북일보 윤석정 사장은 “임실은 전북에서 일제에 가장 활발하게 항거한 지역’이라며 “박준승 선생과 이석용 의병장 등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나종우 전주문화원장은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 전개와 전북의 임실지역 3.1운동'을 주제로한 특별강연에서 "도내에서는 3.1 만세운동이 50회가 펼쳐졌으며 이 중 10회가 임실지역에서 전개됐다"며 "3월 10일 오수보통학교 교사 이광수와 학생들이 처음으로 만세운동을 일으켰으며 12일 임실시장, 13일 임실읍에서 수천 명이 시위에 참여했고 청웅면에서는 15일부터 5일간 연속으로 만세운동이 펼쳐지는 등 임실은 충효의 고장으로 인식됐다"고 밝혔다.
군산대 인문대 김종수 교수는 '임실지역 의병의 특징'을 주제로한 발표에서 "임실의병을 본격적으로 주도한 인물은 이석용으로 1910년 일제의 탄압으로 의병을 해산한 그는 1913년 친구의 밀고로 헌병대에 체포됐으며 재판 당시 일본인 검사의 '천황의 신민이 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차라리 대한의 개와 닭이 되겠다'는 일화를 남겼다"고 도덕적 당위성을 설파했다.
이어 "이석용과 함께 1907년 진안 마이산에서 ‘호남의병창의동맹단’을 결성한 전해산은 1908년 7월 전남 장성에서 ‘대동창의단’을 결성해 일군과 전투를 벌였다"며 "동포의 밀고로 일경에 체포된 그는 재판에서 최후 진술을 통해 ‘나의 두 눈을 빼어 동해에 걸어두라. 너희가 망하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 보리라’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진 토론회에서 위병기 전북일보 수석 논설위원은 "임실은 전북에서도 매우 작은 지역인데 3.1운동 시 그처럼 많은 저항과 민족의식이 충만했지만 단순히 동학을 이어받은 천도교가 활성화 된 지역이라는 점 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나종우 원장은 "임실은 과거 조선시대 사화 등으로 피난한 선비들이 많이 숨어든 지역으로 충∙효사상이 깊이 자리했으며, 이러한 사상은 후대에까지 이어졌고 임실의 3.1운동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강력한 항일운동의 모범사례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유재리 전북역사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임실지역 의병활동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선명한 도덕성에 귀감이 된다"며 "이석용이 아들에게 '너는 조부모께 효도하고 자손을 잘 가르쳐라'는 것과 전해산의 서당 운영은 의병활동의 계승성 측면에서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종수 교수는 "이석용의 아들 이원영은 의병장 고광순의 딸과 결혼해 해방후 건국훈장을 받았으며 현재도 귀감이 되고 있다"며 "전해산의 경우도 전북과 전남지역에서 왕성하게 의병활동을 펼치다 체포돼 옥중에서 순국, 그의 부인도 자결하므로써 항일운동의 의지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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