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을 딛고 선 사람들은 일찍부터 군주가 백성으로부터 존재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왕이 그릇된 정치를 할 때마다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고, 군주의 하늘’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반상의 귀천과 남녀 차별이 없는 대동계를 조직하고 왕조 세습을 부인했던 정여립(1546∼1589)의 꿈과 토지는 백성이 균등하게 나눠야 한다며 낮은 곳에서 민본을 실천한 유형원(1622∼1673)의 바람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사람이 하늘이다.” 외치며 일어선 동학농민혁명군은 곳곳에 집강소를 설치하며 풀뿌리민주주의의 주춧돌을 놓았다. 부안 우동리에 터 잡고 칠산바다 위도를 율도국 삼아 「홍길동전」을 쓴 허균(1569∼1618)은 <호민론>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에 반발하는 백성이 있음을 알렸다.
일제강점기에도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1923년 정우상(1911∼1950)이 13세의 나이로 매일신보 신춘현상공모에 당선된 동화 「무도(舞蹈)하는 어(魚)」의 핵심은 임금이 갖춰야 할 으뜸은 백성의 소리를 고루 들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이다. 1930년 김완동(1905∼1963)의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동화 「구원의 나팔소리」에는 정사에 무관심한 채 악착같이 자신의 이익만 좇던 임금이 백성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추방당하는 내용이다. 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임금은 몰아내야 한다는 두 작가의 신념은 1926년 공립전주고등보통학교의 동맹휴학과 일본인 교장 추방 사건으로 이어졌다. 김제소년회에서 활동한 곽복산(1911∼1971)의 동화 「새파란 안경」(1928)은 물욕에 눈이 먼 부자가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는 내용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다. 1929년 전국의 소작쟁의 389건 중 전북에서 일어난 것이 314건이라는 기록은 이 작품들의 가치를 더 확고하게 한다. 글에는 작가가 속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사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민주화 과정에서 청년과 시민이 거리를 가득 메운 것도 바른 정치를 일깨우기 위해서다. 1960년 4·19혁명에 앞서 이승만 정권을 규탄하는 학생들의 첫 시위가 전주에서 있었다. 전북대 학생 7백여 명이 독재 정치 타도와 3·15 부정선거의 재선거를 요구한 ‘전북대 4·4운동’이다. 1965년 3월 한·일 외교 회담 반대 데모가 전국적으로 벌어졌을 때도 전북대와 전주고 학생 수백 명이 ‘매국적인 한·일 회담 절대 반대’를 쓴 현수막을 들고 시내를 누볐다.
유신 치하에서 처음 구속된 성직자는 1972년 12월 13일 전주남문교회에서 강제 연행된 은명기(1921∼1996) 목사다. 원광대·전북대·전주대 학생들이 앞장선 1980년 5월 4일 시위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운동이며, 전주신흥고 학생들이 주축인 5·27시위는 고교생이 스스로 무리를 이뤄 분연히 일어선 전국 최초이자 유일한 시위다. 1980년 5월 17일·18일 전주의 처절한 밤과 5·18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인 이세종(1959∼1980) 열사, 1987년 14개 시·군의 거리를 가득 메운 6월항쟁, 2000년대의 촛불집회 등은 얼마나 애절하고 당당한가.
‘부정’이 ‘정의’를 압도하는 시대에 ‘민주’와 ‘민본’은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할 가치가 되고 있다. 난세 속 4·10 총선, 외침과 저항과 혁신이 가득한 이 땅의 기운을 거스르지 말자.
/최기우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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