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찬양한 봄날의 서정이야말로 더 바랄 것이 없다. “무릇 천지는 만물이 쉬어가는 여관이요/ 시간은 긴 세월을 지나가는 나그네라/ 부평초 같은 인생 꿈같은데 즐긴다 한들 얼마나 되랴!/ 따뜻한 봄날의 아련한 경치로 나를 부르고/ 천지가 나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빌려주었음이랴!“
벚꽃이 만개하여 전국이 꽃 대궐에 싸였다. 역시 하동포구에서부터 가로수의 벚꽃이 환희에 차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데크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수놓인 카펫을 밟으며 걷는 맛이 그윽하다. 언제 이런 풍경을 보았을까. 또다시 볼까. 천지의 은혜로움을 누리는 기쁨을 어찌 축복하지 않으랴! 이 순간, 시간이란 긴 세월을 지나는 나그네이며 또 오늘 벚꽃 길을 지나는 나그네라!
하늘에서 내려오던 눈꽃들이 잠시 나무 바닥에 붙어서 꽃구름으로 소복하게 쌓였다. 꽃나무 아래를 걷는 사람도 뭉게뭉게 모두 행복하다. 천천히 꽃비를 감상하며 봄날의 상념에 젖는다. 잠시 걸으면서 화개천의 흐르는 물줄기에 빠질 듯한 꽃가지들을 아련하게 바라본다.
눈처럼 휘날리는 꽃잎을 손들어 전송하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져 모인 꽃을 사뿐히 ‘즈려밟으며’ 가는 길이 어디일지 마음으로 그리나, 알 수 없는 그 길, 같이 흐를 뿐이다. 애틋하게 고목이 된 벚나무들이 굵은 가지를 늘어뜨리고 화개천을 따라 줄 서 있다.
시커먼 둥치의 옆구리에서 불쑥 불거져 나온 꽃송이가 얼마나 기특한지. 알 수 없다. 그 신통력. 꽃잎들은 어디를 갔다가 봄날 이맘때만 되면 다시 나무속으로 들어갈까. 나도 거기가 어딘지 알고 싶다. 가면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니, 떠나간 모든 임이 꽃잎이 되어 내려오는지도 모른다. 꽃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나 역시 세상에 태어나서 몇십 번의 봄 향기가 나의 일부가 되어 쌓였을진대, 어찌 그 꽃님들을 반갑게 맞이하지 않으랴! 환희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늙은 벚나무도 옆구리에서 툭툭 생생한 꽃잎을 틔워낸다. 꽃잎 날리는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은 옆구리에서 싯다르타 태자를 생산했지 않은가. 그리고 세상을 떠났지. 그리고……. 나도 늙었지만 싱싱한 정신으로 옆구리에서 오래 기억될 글줄이나 터졌으면….
늙은 벚나무의 몸피에서 피워낸 꽃잎 같은. 아니 가슴에 쌓인 그리움이 꽃 같은 글줄이 되어 생산되면 좋으련만, 황홀하고 환장할 봄이 누군가의 가슴에서 오래도록 살 수 있는 열매 같은 문장으로 익어가도록.
이백이 저런 명문장을 이미 써버렸고 송한필이 짧은 인생을 이리 읊었으니 나는 즐거이 시정(詩情)을 음미하며 묵묵히 세월을 이겨보리라.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어제 내린 비에 핀 꽃이 오늘 아침 바람에 떨어지네, 가련타, 봄날의 일이 비바람 속에 오가네. 인생사가 또한 그러하니…. 어제 화사했던 꽃잎이 오늘 밤비에 다 떨어지겠다.
△조윤수 수필가는 <수필과비평> 등단작가로서 '새전북 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수필과비평작가회 회원이며 저서 <기도하는 나무>,<치앙마이 한 달 살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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