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이었던 나에게 전주살이가 즐거운 이유는 맛있는 음식, 여유로운 생활환경 그리고 전주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국제 규모의 축제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것에 있다. 2000년부터 시작, 어느덧 20년 넘게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축제인데, 느닷없이 찾아오는 전국 각지의 지인들 덕분에 매년 봄, 설레는 밤을 함께 하였던 전주국제영화제 이야기를 해보자.
도대체 전주국제영화제는 어찌 알았으며, 전주에 내가 살고 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꾸준히 다양한 사람들이 전주국제영화제를 찾고 있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영화제를 찾은 이유를 묻는 나의 질문에 ‘전주에 와야만 볼 수 있다’, ‘독특하다’, ‘새롭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고는 하는데, 내가 보아온 영화들도 하나같이 일반 영화관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난해’하고 ‘평범하지 않은’ 영화들이었다. 온종일 거리의 풍경을 고정된 화면으로 보여주는 영화, 수도자가 걷는 모습만 보여주는 영화, 남미와 아프리카와 중동의 낯설고도 어색한 영화. 어디서 이런 영화를 구해오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참으로 독특하다.반면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함께 '대한민국의 3대 영화제'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낯섦’에 있다. 비주류 작품이나 독립영화를 바탕으로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함으로써 평론가는 물론 영화팬들에게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 그들이 영화제에게 원하는 것은 오로지 일상과 다른 ‘일탈’이다. 영화는 분명 상업적 측면과 함께 우리네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예술이어야 하며, 전주국제영화제가 그러한 대안적 역할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
반응은 어떨까? 영화제 종료 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슈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상영이 지속되고 있다. 성공의 가장 큰 이유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직접 생산하는 콘텐츠에 있다. ‘디지털’ ‘독립’ ‘대안’을 내세우며 2000년 출발했던 전주국제영화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영화용 ‘필름’ 카메라가 아닌 방송용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해 영화를 제작하는 “디지털 삼인삼색”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다. 필름을 사용한 제작 방식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이 디지털이었는데, 각기 다른 국가에서 선발된 3명의 감독이 하나의 주제를 목표로 만드는 3편의 단편영화는 영화제의 얼굴이 되었다. 이러한 전주국제영화제만의 독특한 제작 지원 사업을 통해 매년 독창적인 디지털 영화가 생산될 수 있었으며, 다양한 국적의 감독들이 전주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결국 문화라는 것의 특성은 각기 다른 개성의 충돌에서 비롯되는 합종연횡. 그 속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가치일 수 있는데, 일탈을 꿈꾸는 다양한 인류가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공간에서 만나 영화를 넘어 전주만의 해방구를 만들고 새로운 대안을 창조하였다. 디지털이 주류가 된 지금은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규모를 키운 이 프로젝트는 최근 ‘노무현입니다’를 비롯한 특색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 주류 영화계에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전주만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새로운 방식으로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25회를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로 더욱 발전하기를 응원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더 낯설게, 나의 일상과 다른 문화적 경험을 제공해, 새로운 즐거움과 뜻밖의 만남이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홍현종 JTV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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