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에 정수리가 녹을라치면 한줄금 소나기가 내렸지요. 우르릉 번쩍, 낮잠 자던 누렁이가 깜짝 눈을 크게 뜨고, 논두렁을 뛰어넘던 개구리가 고꾸라져도 먹장구름은 시침 뚝 떼고 시루봉을 넘어갔지요. 소싯적 기억입니다.
‘곳에 따라 소나기’랍니다. 소나기는 쇠잔등을 다툰다고 하지요. 여기일 수도 있고 거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나일 수도 그대일 수도 있겠습니다. 딱 여기도 아니고 꼭 거기도 아닌, 절대 오보일 수 없는 곳에 따라 소나기. 우산은 들고 가시든 그냥 가시든 어차피 각자도생입니다.
미어지게 상추쌈 밀어 넣고 꾸벅거리는 사이 소나기가 다녀가셨네요. 유안진 시인의 시구는 외우면서 “비 가는 소리” 못 들었네요. 자동차 빠져나간 자리에 고슬고슬 그림자가 남아 소나기 다녀가신 줄 알겠습니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라지만, 어쩌다 한 번쯤 무방비로 젖어도 볼 일입니다. 부러 우산을 잊고 오기도 할 일입니다. 곳에 따라 소나기는 나를 비켜 가겠지, 틀리기를 바라는 거짓말 같은 핑계로 말입니다.
“노란 선 뒤로 물러서십시오!” 안전한 곳에서 긋고 갔네요. 소나기 지나간 뒤에는 무지개가 뜹니다. 천둥 번개에 낮잠 자던 누렁이처럼 놀라고, 논두렁의 개구리처럼 뛰었을 사람들 분명 무지개다리 건너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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