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자 하니까 살았습니다. 1·4 후퇴와 포항전투, 집에 전사 통보가 2번이나 갔어요”
6.25 참전용사인 윤명한 장로(94)는 “당시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하신 진리의 말씀에 의지해, 하나님의 뜻에 맡기니 마음이 편해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20대, 의무대원으로 복무 중이던 윤 장로는 1·4 후퇴 당시 환자 수송 중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인민군의 포로가 됐지만, 탈출했다. 또 포항전투 당시 논둑을 뚫고 온 실탄에 총상을 입어 이마를 7바늘 꿰매기도 했다.
윤 장로는 “포로가 됐을 때는 15일 만에 탈출에 성공했고, 포항전투 당시에는 내가 죽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두 번 모두 집에 전사 통보가 내려졌다. 집에서는 나의 제사를 지내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부모님을 무척이나 서럽게 해드려 죄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렇지만 그때 살아남았기에 6남매와 증손을 보고 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됐다”며 지나온 세월을 회상했다.
윤 장로는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나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그는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지난 2일까지 개최된 남원시 보절면 신흥교회 바자회에 참석했다. 앞선 2월에는 한일장신대학교에 1000만원의 발전기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또한 윤 장로는 자녀들에게 공경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다.
그는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다 보니 부족함이 없다는 긍정적인 믿음이 있었다. 또 좋은 자손들을 보내주셔, 효를 실천하기 쉽지 않은 세상 분에 넘치는 효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옛 시에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 자식은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자손들이 나에게 최선을 다하니 이렇게 기다릴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남원 출생인 윤명한 장로는 보절초등학교와 남원농업야간속성중학교를 1회 수료했다. 1957년 진기교회 서리집사, 1991년 전국장로회 전북남노회장로회 회장, 1993년 전북남노회 부노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 1956년부터 1991년까지 남원시 농촌자원지도자로 활동하며, 전북도지사상 및 남원군수 표창 등을 받았다. 한편 서울 중구 필동에서 애견종합병원을 운영하는 '스타 수의사' 윤신근 박사가 윤명한 장로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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