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 2050] 온고을여성축구단
"미림이랑 올라와! 힘들어도 붙어줘야지!"27일 오전 7시30분 전주시 아중체련공원 잔디구장. 모자를 푹 눌러쓴 한 남성이 선수들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선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뛰었다. 비 때문에 공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듯 골이 쉬이 터지지 않았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수비진의 실수. 결국 그물이 흔들렸다. 결과는 1 대 0. 7월 태백에서 열리는 '제9회 여성가족부장관기 국민생활체육 전국여성축구대회'를 앞두고 맹렬히 뛰는 이들은 바로 '온고을여성축구단(회장 김효례)'이다."남성 축구팀 기린봉클럽에 남편을 따라와 구경온 아줌마들이 만들었죠. 그러다가 아들이 축구하는 엄마들도 참여하게 됐어요. 아들 경기장을 쫓아다니다 보니, 직접 뛰어보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친구 따라 강남 간 회원이랑 새로운 운동 해보고 싶다는 회원도 있어요."전주 공업고등학교 축구선수 아들을 대동한 추성림씨는 온고을여성축구단 창단 멤버다. 추씨는 "운동장 열 바퀴 돌라고 하면 못 해도, 전·후반전 20분씩 축구 하라고 하면 한다"며 "생각만큼 힘들지 않다"고 했다.2008년 창단된 온고을여성축구단은 기린봉여성축구단이 모태다. 이들은 전주를 대표하는 여성축구단이 되자는 뜻에서 온고을여성축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주부 26명이 뛰고 있다. 경기 중의 모습은 용맹하지만,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썬 크림을 바르고 웃을 때의 모습은 그냥 평범한 이웃 아줌마들. 임미림 부회장(슈슈헤어라인 미용실 대표)은 "우리 아저씨(남편) 따라 축구 시작했는데, 이젠 나만 하고 있다"며 "맞벌이하는 주부들이 많아 운동할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새벽부터 나와서 한바탕 뛰고 나면 몸이 가뿐하고 스트레스도 날아간다"고 말했다.전성희씨는 여성축구단에서 보기 드문 왼발 공격수다. 울산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전주에 와서도 축구를 저버리지 못했다. 축구 연습이 없는 날은 테니스까지 병행, 운동으로 다져진 강철 체력은 축구장에서도 빛을 발한다. 전씨는"이번 대회에서는 실력에 따라 조가 배정된 만큼 우승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회원들은 초반에 패스와 드리볼링, 킥 헤딩 등 기초기술 훈련을 반복한다. 볼에 대한 감각과 유연성을 살려야 해서다. 이들을 지도해온 황임만 감독은 "아직은 성에 차진 않지만, '초짜'들의 '오합지졸(?)'이었던 과거와 비교해 많이 성장했다"며 "무조건 우승이 목표"라고 말했다. 황 감독은 하지만 축구는 성패에 초점이 맞추기 보다 즐기기 위한 자리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과거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축구가 이젠 여성들에게도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고 했다."경기가 잘 되려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즐겨야 합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선전을 보세요. 아쉬움도 컸던 경기였지만, 아르헨티나에 패한 뒤에도 컨디션을 회복해 좋은 경기를 보여줬잖아요. 즐기는 축구로 이뤄낸 위대한 승리입니다. 온고을여성축구단은 앞으로 이렇게 서로 잘 챙겨주면서, 즐기는 축구를 했으면 좋겠어요."김효례 회장(음식점 무릉계 대표)은 "축구를 직접 하면, 큰 흐름에서 경기를 보게 된다"며 "포지션, 공격 전략, 심판에 대해서도 두루 살펴본다"고 말했다. 축구 연습 외에도 무수한 경기 관람을 통해 운영의 묘미를 읽는 것도 또 다른 훈련. 김 회장은 축구 경기를 보면서 "아, 이게 바로 운동의 세계구나"하고 깨닫게 될 때가 많다고 했다.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회원들은 주부 특유의 빠른 손놀림으로 후다닥 일상복으로 갈아입는다. 남편 챙기랴, 아이 챙기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 손 흔들며 운동장을 빠져 나가는 팀원들의 뒷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회원들은 주먹을 굳게 쥐며 "온고을여성축구단, 화이팅!"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