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부채를 찾아서 4. 그 여자들의 무기 ‘부채’
〈소리여〉, 그 여자들에게 있어 부채는 가장 큰 무기이자 힘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리에 입문해 짧게는 이십여 년 길게는 삼십여 년간 소리를 하는 다섯 명의 여자들이 있다. 서울, 경상, 전라남도, 전라북도 이렇게 서로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스무 살 이후부터 소리의 고장 전라도에 둥지를 틀고 활동하고 있다. 부채는 기본적으로 더위를 쫓고 햇볕을 가리는 기능, 시와 그림을 그려 넣어 자신의 인문예술적 소양을 표현하는 예술품으로서의 기능, 멋스러운 선추를 달거나 선면에 예쁜 색을 넣는 멋쟁이의 필수품으로서의 기능, 친한 사람에게 주는 정중한 선물로서의 기능, 마지막으로 소리꾼의 가장 중요한 소품으로 활용되는 기능이 있다. 소리꾼 다섯 여자에게 부채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생활 속 부채 이야기 그 네 번째로, 〈로컬소리단 소리여〉 다섯 여자들과 부채에 얽힌 이야기를 만나 보자. #소리꾼 김민선의 부채 이야기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님전의 비나이다. 쌀이 되거든 한 말만 주시고, 보리가 되거든 두 말만 주시옵고, 부채가 되거든 열 자루만 주시오면, 여러 날 공연할 동기들을 구원을 하여 살리겄네다. 제발 공연할 때 부채가 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비나이다.
소리꾼 김민선은 전주에서 나고 자랐다. 열여덟에 판소리에 입문해 스물두 해를 보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흥보가』 中 흥보가 놀부에게 비는 대목이다.
소리꾼 김민선에게 부채란, 절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스무 살 때 일이다. 열여덟, 다소 늦은 나이에 소리에 입문한지라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정식으로 무대에 선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신입생 연주회는 피해 갈 수 없는 일. 근 한 달 넘게 똑같은 곡을 동기들과 연습했다. 처음 하는 민요, 처음 하는 발림. 실수 연발이라 선배들의 지적이 끝없이 이어졌다. 멀쩡히 잘 되던(잘되던) 소리와 동작이 발림만 나오면 긴장되고 떨려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결국, 공연을 하던 중 손에 든 부채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옆에서 노래하는 동기들 눈치, 객석에서 뚫어져라 응시하는 관객들 눈치를 살피며 자기 딴에는 아무도 모르게 부채를 주어서 다시 공연에 임했다. 물론 공연 후 선배들에게 엄청나게 깨진 건 안 비밀. 지금이라면 그냥 부채 없이 손동작으로 공연을 이어 갔을 텐데. #소리꾼 문모두의 부채 이야기
춘향이 간신히 정신 차려 어사또를 바라보니, 옥문 밖에 거지 되어 왔던 낭군이 분명쿠나.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야속하고 독헙디다. 동원에 새봄이 들어 부채가 날 살렸네.
소리꾼 문모두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열두 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삼십 년을 보냈다. 지금은 완주에 터를 잡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춘향가』 중 춘향이와 어사가 만나는 대목이다.
소리꾼 문모두에게 부채란 군인에게 있어 총과 같은 존재이다.
지호와 주호는 문모두의 제자다. 아이돌과 트로트에 빠져 있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민요와 판소리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들이다. 연습생이 되어 일 년 정도 되었을 무렵 대회에 참가했다. 소리도 소리이지만 너름새 또한 점수에 포함되는 것이 경연 대회이다. 소리 지도와 함께 부채를 들고 표현하는 발림 연습을 쉬지 않고 했다. 그런데 왼손 발림을 하고 양손 모두 들라고 하면 한 손만 들지 않나, 부채를 들어야 하는 발림 과정을 그냥 패스하질 않나. 덜렁댐은 기본이고 장난은 부가적으로 장착하고 있는 초등 남자아이들에게 소리 끝의 마지막 부분, 부채를 펴는 발림은 최고의 난도를 가졌다. 대회 당일, 스승의 고급스러운 합죽선을 손에 쥔 요 녀석들, 국가무형문화재라도 된 듯 으스대더니, 결국은 선생님, 부채가 찢어져 버렸어요. 하는 것이었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더니, 대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네 것이 좋네, 내 것이 좋네 부채 전투를 벌이던 녀석들의 손에는 처참하게 찢어진 스승의 애정부채가 들려 있었다. 소리꾼에게 합죽선 부채는 군인의 총과 같은 법. 방아쇠는커녕 장전 한 번 못해보고 전투를 마친 녀석들은 그 이후 일취월장해 부채 발림도 능숙해지고 소리 실력도 크게 늘었다. 애꿎은 스승의 부채만. #소리꾼 이경래의 부채 이야기
하루 가고 이틀 가고, 열흘 가고 한달 가고, 날 가고 달이 가고, 해가 지낼수록이 임의 생각이 뼛속에 든다. 소학 대학 예기 춘추 모시상서 백가어를 역력히 외어 가다 나까지 다 잊어버리셨구나.
소리꾼 이경래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다. 열세 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스물두 해를 보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춘향가』 중 춘향이 이몽룡 그리워하는 대목이다.
소리꾼 이경래에게 부채는 인생의 커닝 페이퍼다.
이경래는 초등학교 6학년인 열세 살에 소리를 처음 접했고, 첫해에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무대 울렁증에 판소리의 그 기나긴 내용들은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가사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찌어찌 그 무대는 마무리되었지만, 첫 무대의 실수는 트라우마가 되어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가사를 한두 구절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자 선배들이 부채에 잘 잊어버리는 대목을 적어.라고 조언해 주었다. 소위 말하는 커닝 페이퍼다. 새끼손가락 너비에 한 뼘 길이의 합죽선에 나만의 방식으로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서 무대에 다시 섰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일까? 커닝 페이퍼 한번 보지 않고 무사히 소리를 마쳤다. 믿는 구석이 생겨서인지 그 뒤로는 가사를 잊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지금도 중요한 무대에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살짝 적바림을 하기도 한다. #소리꾼 이경화의 부채 이야기
추월은 만정허여 산호 주렴을 비치어들고, 심황후 기가 맥혀 기러기 불러 말을 헌다. 울고 오는 저 기럭아, 너 무삼 설움 있어 저리 슬피 울고 오느냐. 도화동 우리 부친 내게 부채 선물한 소식 전하고자 우느냐.
소리꾼 이경화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다. 열세 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스물두 해를 보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심청가』 중 추월만정이다.
소리꾼 이경화에게 부채는 버팀목이자 사랑이다.
이경화는 최근 셋째를 낳았다. 선녀가 아이 셋을 낳고 하늘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동화처럼, 그도 셋째를 임신하고 나서 자신감이 많이 없어졌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내가 이제 무대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가끔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가 선물을 주셨다. 시아버지는 소리하는 며느리에게 매우 특별한 선물, 합죽선을 주셨다. 손에 착 감기는 느낌과 선면에 그려진 그림 또한 멋졌다. 부채를 받자마자 열망이 생겼다. 더 큰 무대, 더 좋은 활동을 해야겠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이경화는 시부가 주신 그 부채로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으로 입상했고, 지금도 그 부채를 들고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시부가 주신 부채는 그냥 부채가 아닌 이경화 소리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사랑이다. 부채로 인해 잠시 잊고 있었던 삶에 대한 에너지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소리꾼 최수아의 부채 이야기
주막에 들어 잠잘 적에 뺑덕이네 몹쓸 년은 주막 근처 사는 봉사 중에 제일 젊은 황 봉사 부채를 벌써 꾹 찔러 약조허여 주막 딴 방에 두었다가 심 봉사 잠든 연후에 둘이 손을 마주 잡고 밤중에 도망을 허였구나.
소리꾼 최수아는 전라남도에서 나고 자랐다. 열두 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서른 해를 보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심청가』 중 황성 올라가는 대목이다.
소리꾼 최수아에게 부채는 인생의 동반자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소리에 입문해 서른까지 공부도 하고 단체에 속해 일도 하고 보냈다. 그러다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소리를 쉬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소리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힘에 부쳤고, 10여 년의 공백기가 생겨 버렸다. 마지막 무대에서 사용했던 부채는 늘 책상 서랍에 접힌 채 놓여 있었다.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부채를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이 좋지 않았고, 판소리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 갔다. 소리꾼이 부채를 마주하는 때는 무대에서 소리를 할 때이다. 연습할 때 주로 부채를 사용하는데 부채를 펼칠 때면 늘 떨리고 긴장되었다. 부채가 촤~악 펴지면서 파르르 떨리는 진동은 소리꾼에게 적당한 긴장과 에너지를 준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가족들과 지인들의 응원과 격려를 발판 삼아 3년 전에 다시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시 꿈같은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무대에 서기 위해 한복을 새로 맞추고 부채도 새롭게 마련했다. 최수아에게 있어 합죽선을 새롭게 마련하기 위해 나선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펴보고, 펴지는 소리를 들어보다가 손에 착 감기는 그 느낌에 그녀는 울어버렸다. 아,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다시는 손에서 부채를 놓지 말아야겠다. 계속 소리꾼으로 살아가리라. 중년이 다 된 여자가 부채 한 자루를 들고 애틋한 눈으로 연인 보듯이 울고 있으니 남들 보기엔 얼마나 의아했을까마는 최수아에게 있어 그날의 울컥함은 소중히 간직할 다짐이자 약속이었다.
나에게 만남, 이별, 설렘, 긴장 그리고 행복을 주는 부채야, 영원히 함께하자. ■ 글: 이향미(전주부채문화관 관장)
■ 찾아간 곳: 전라북도 완주군 모두소리전수관 & 전주시 수아소리연습실
■ 찾아간 날짜: 2020년 7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