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에 거는 기대
선거가 끝났다.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는 개운함과 서운함이 교차하는 선거였다. 그간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오만과 국정 성과에 냉엄한 심판을 내렸다는 점에선 분명 개운한 선거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가진 문제를 토론하고 제시된 공약을 살펴보며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선거라는 본질로 보면 아쉬움이 많은 선거였다. 이번 선거에는 특별한 이슈가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하며 여기저기 발전 공약을 내세웠지만,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나마 이슈가 된 것이 ‘메가시티’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꽃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낭만적 발언에 사라져 버렸다. 진정성이 느끼지 않은 태도에 국민이 등을 돌린 것이다. 이번 선거가 개운한 만큼 아쉬움이 큰 건 우리 사회가 놓인 현실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절대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 놓여 있다. 전북을 포함한 지방의 현실만 보더라도 그렇다. 급격히 줄어드는 인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인접 도시와 합쳐 인구수를 늘릴 것인가? 아니면 점점 비는 공간을 활용에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스마트한 축소전략을 쓸 것인가? 관계 인구를 높일 것인가? 관광인구를 높일 것인가? 이를 위해 전북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게 모호한 게 현실이다. 제대로 된 선거라면 이런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선거였어야 하나 이번 선거는 그럴 여지가 없었다. 민주당이든 국민의 힘이든 과거에 대한 심판만 얘기했을 뿐, 우리의 삶과 지역에 대한 문제는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더 중차대한 건 시대적 문제다. 코로나 이후 세계는 급격한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데 이를 풀어갈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2000년대에는 누구도 거부하지 못할 창조경제나 창조도시가 있었고, 2010년대에는 공동체나 거버넌스, 각 개인의 행복이 있었으나 2020년대에는 그런 단어가 없다. 갈등이나 대립 같은 부정어가 있을 뿐 긍정어가 없다. 누구도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누군가 비전을 제시하면 비난하기 바쁘다. 앞으로 나가기보다 서로 발목을 잡고 있는 형상. 여기서 정치는 길을 잃고, 정책은 여러 담론이 경쟁하는 전쟁터가 된다. 사실 선거라는 건 이 비전을 놓고 하는 게임이다. 내가 이 나라, 이 사회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를 보여주고 그 동의를 받는 게 선거다. 이 과정이 삭제되다 보니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를, 비전을 선택하지 못했다. 지방소멸이 급격히 이루어지고, 기후 위기가 체감되며, 디지털로 인한 혼란이 그 어느 때보다 가중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을 중심으로 해야 할지, 국가적인 경제발전을 중심으로 해야 할지, 거점을 육성하는 발전전략을 추구해야 할지, 각 지역이 발전하는 방향을 취해야 할지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이제 그 선택의 몫은 국회로 넘어간다. 새롭게 선출된 자들이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풀어가야 할 의제로 남은 것이다. 앞으로 지방선거까지 2년. 22대 국회에 남은 날은 딱 2년이다. 2년 내에 비전을 제시하고 성과를 내면 다음 선거는 미래를 토론하는 선거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또 누군가를 징벌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또 누군가를 징벌하는 선거가 되지 않도록 22대 국회가 잘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라도삼(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