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백제시기 집수시설 익산토성에서 최초 발굴
향후 익산 백제 관방시설 연구에 새로운 장 열어
'익산토성'은 현재 행정구역상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산52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용화산 남서쪽 산줄기를 따라 가다보면 해발 120m내외의 오금산 정상부에 있으며 성의 둘레는 690m, 내부 면적은 2만6400㎡ 내외의 포곡식 산성이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92호로 지정되였다고 하니 오래전부터 중요한 역사유적지로 여겨졌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익산토성은 과거부터 매우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워져 이채롭다. 오금산에 있다하여 ‘오금산성’이라 불리기도 하고 고구려 안승이 머물렀다 하여 ‘보덕성’이라 일컫기도 한다.
문헌자료를 찾아보니 익산토성, 오금산성과 관련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으나, '보덕성'이나 '보덕국'이라는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나 『신증동국여지승람』 익산군 고적조, 『금마지』라는 옛지도의 고적조, 익산읍지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특히 주목되는 기록은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조선총독부 고적』자료에 ‘오금산 위에 보덕성이 있는데 토축성으로 그 둘레가 육정반’이라는 비교적 상세한 설명이 있고 익산토성 북쪽 성벽에 ‘고적 제127 익산토성’이라는 표석이 있어 일제강점기에는 익산토성으로 불린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최근 이 익산토성 관련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이슈가 있다고 하여 부랴부랴 찾아보게 되었다. 사실 익산토성은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가 세계유산에 등재될 당시 그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등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결국 백제와는 직접적 영향이 없다는 중론에 따라 세계유산에는 제외되고 현재는 가능성 있는 백제 관련 핵심유적 정도로 치부된 비운의 유적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익산 왕궁리 유적이 백제 최후 왕도로 점차 그 위상을 찾아가는 상황에서 익산토성은 당시 도성의 중요한 관방시설이였을 것이라는 추정에 따라 재발굴조사가 2016년부터 추진되면서 매우 놀라운 유적이 속속 발굴되고 있다.
물론 1980년과 1983년 당시 남문지와 그 주변의 평탄지 그리고 성벽 일부에 대한 발굴조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익산토성 내부에 빽빽한 대마무 밀식상태와 난잡한 군 참호시설 흔적 등으로 인해 정밀한 발굴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였다.
어쨌든 가장 눈에 띄는 발굴성과를 간추려보면 2016년 시굴조사시 내부 건물지 흔적과 다량의 토기편이 확인되었고, 2016년부터 2018년 진행된 4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북사(北舍)'명의 토기편과 '수부(首府)'명의 인장와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익산과 더불어 부여 관북리, 부소산성 등 옛 백제 왕성지역 일부 지역에서만 출토되는 유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이런 발굴성과를 기초로 2020년부터 시행된 백제왕도 핵심유적 마스터플랜에 따라 발굴조사는 더욱 가속되어 2021년부터 2023년까지는 본격적으로 서문지, 남쪽 곡간부와 평탄대지 그리고 집수시설 확인 등 핵심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대해 부지런한 정밀 발굴조사가 추진됐다.
그리고 마침내 2023년 익산토성 남문지 일원성벽 안쪽에서 정교한 형태의 집수정이 발굴된다. 아직 세간에 공개되지 않은 시설로 그간 부여 ․ 공주의 일부 산성에서만 확인되고 있는 주요 시설물이라 하겠다.
이번 발굴된 집수정은 석축이며 둥그런 원형으로 조성되어 있고 규모는 9.4m ×3.5m정도이다. 아주 큰 편은 아니나 익산토성의 규모를 고려해보면 제법 큰 규모라 할 수 있겠다. 아직 완벽하게 발굴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실체를 정확하게 논할 수는 없지만 백제 관방시설 발굴중 가장 중요한 시설물이라 할 수 있겠다.
더불어 현 익산토성의 명칭을 ‘오금산성’으로 변경하는 문제도 논란거리라 할 수 있겠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익산토성은 석성으로 축조된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토성으로 알려져 왔다. 아마 제대로된 성벽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도 있겠으나, 백제는 주로 토성을 위주로 성벽을 조성한다는 편견이 작용한 듯 보이고 일제강점기시 고적조사 결과를 그대로 차용한 결과라 사료된다.
그런데 문화유산의 명칭을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유산의 구체적 배경과 상세내용을 미리 설명하는 명패와 같아서 잘못 명명된 경우 유산에 대한 오해를 불러올 가능성이있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재위원회 명칭변경 심의를 기다고있는 상황으로 조만간 제대로 된 명칭으로 변경될 것이 기대된다.
결론적으로 익산토성의 발굴현장을 살펴보면서 '머리로 이해하는 역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지는 역사현장을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더 많은 국민에게 소개할 수 있을까?'라는 커다란 숙제를 또다시 어깨에 메는 시간이 된 듯하다.
이영일 백제문화센터 파견 전북특별자치도 연구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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