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탐구 집] 풍경을 담은 집
지리산 천왕봉을 그림처럼 액자에 걸고 있는 집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에 있는 간청재는 임형남노은주 건축가가 설계한 집으로, 풍경을 담은 집으로 손꼽히는 대표작이다. 두 건축가가 이 집에 풍경을 담기 위해 착안한 것은 선조들의 지혜였다. 예로부터 한옥에서는 창을 그림을 담는 액자로 보고, 창의 크기나 위치 등을 통해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자연의 경치를 빌린다는 차경의 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두 건축가는 현대식 목조주택에 한옥의 양식을 접목해 집을 지었다. 거실은 대청으로 재현하고, 경관이 가장 좋은 곳에는 세 면이 개방되는 누마루가 달린 집. 대청 앞창에는 산수화가 걸리고, 누마루에서는 3개의 액자 너머로 파노라마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좋은 풍경을 누리려면 반드시 높은 곳에 집을 지어야 할까? 경기도 가평에는 들판 한가운데, 세상에 하나뿐인 풍경을 담은 집이 있다. 숲으로 착각할 만큼 우거진 나무와 식물들로 가득한 정원. 집 안 곳곳의 크고 작은 창에는 잘 가꿔놓은 정원 풍경이 그림처럼 담겨 있다. 이 풍경을 만든 주인공은 바로 조경가인 김영준 씨이다. 평소 산행을 좋아하시던 부모님이 다리 수술로 더는 숲을 찾지 못하게 되자, 손수 집 안에 숲과 같은 정원을 만들어 선물한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만들어준 풍경을 누구보다 좋아했던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아들은 혼자 남은 어머니를 위해, 본래 있던 집 옆에 작은 집을 증축해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이사를 들어와 살고 있다. 할머니는 정원에서 두 아이가 뛰어놀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고요하던 집은 어느새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가족들이 함께 살며 만들어가는 삶의 풍경이 담긴 그 집의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찾은 풍경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얻은 이도 있다. 김재선 씨는 말기 암 진단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산골짜기에 집을 지었다. 평생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매달린 그가 유언장을 쓰는 심경으로 지은 집이다. 당시만 해도 생명이 위중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마당에 자신이 묻힐 나무를 심고, 환자에게 좋다는 핀란드식 사우나도 지었다. 그런 그가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집 밖에 펼쳐진 산의 풍경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앞산이 마주 보이는 2층 서재를 마치 전망대처럼 통유리로 꾸며, 창 너머로 산을 품고 있는 듯한 진귀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아내와 함께 자연의 경치를 즐기고, 정원에 꽃과 나무를 가꾸다 보니 기적처럼 건강을 되찾았다. 제2의 인생을 되찾게 해준 그 집을, 그는 생명과도 같은 집이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그동안 누리지 못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며,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따스한 삶의 풍경이 담긴 집의 이야기가 찾아간다.
누구나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집에 살기를 꿈꾼다. 집 밖의 풍경을 담는 건 창의 크기나 위치 등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창에 담긴 자연의 경치가 아무리 아름다운들, 그 집에 삶의 풍경이 없다면 공허하다. 집을 완성하는 것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듯, 풍경을 완성하는 것 역시 그 집에 담긴 삶의 풍경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