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정경 시인-페터 춤토르 '분위기'
나의 근무지는 팔복예술공장이다. 2019년의 첫 출근길에 나를 태운 택시 기사는 “여기는 뭘 만드는 공장이에요?”라고 물었고, 그 뒤로도 더러 그런 일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폐업하기 전까지 카세트테이프 공장이었던 이곳은 이후 16년 동안 방치되다가 이제는 전시와 예술교육,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실행되는 현장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팔복예술공장에 방문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기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단순히 오래되고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공간이 고유의 분위기를 갖게 되었다는 말이겠다. 페터 춤토르의 『분위기』에 매료된 것은 그야말로 ‘분위기’ 때문이다. 그의 건축물이 간직한 분위기. 이 책은 2003년에 ‘독일 문학·음악축제’에서 <분위기. 건축적 환경. 주변의 사물>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춤토르의 강연을 바탕으로 한다고 밝혀두고 있다. ‘분위기’는 춤토르가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생각해온 주제이며, 그에게 분위기는 미학적 범주에 속한다. 이 책의 첫 장에 인용한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가 1844년에 비평가 존 러스킨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분위기는 나의 스타일이다” 스위스의 건축가 춤토르는 2009년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그의 수상은 당시만 해도 의외로운 결정이라고들 했다. 이전 수상자들은 국가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이름을 세계에 알린 건축가들이었던 반면 춤토르는 스위스 알프스의 작은 마을에서 일하는 은둔형 건축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축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한 구도자와 같은 그의 건축 철학을 인정한 건축계에서는 이미 ‘건축가들의 건축가’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분위기』는 춤토르가 건물을 설계하면서 깨달은 아홉 가지 사실에 대해 다룬다. 그는 건축물의 분위기는 시각적인 부분 외에도 소리나 몸이 감지하는 온도, 습도, 주변 사물과의 조화 등 여러 측면이 공간의 분위기를 인지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한다. “건축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시간예술이다. 건물 내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떠올리면 된다. 나는 작업할 때 여러 지점들을 고려한다. 온천 프로젝트로 설명하겠다. 우리에게는 편안하게 거닐 수 있는 환경, 지시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유혹하는 분위기,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병원의 복도는 사람들에게 지시한다. 그와 달리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걷게 만드는, 부드럽게 유혹하는 기술은 건축가의 몫이다.” - 『분위기』 41쪽 그가 언급한 온천 프로젝트는 스위스 그라우뷘덴주 발스에 있는 온천이다. 그는 알프스산맥에서 나는 편마암 6만여 개와 콘크리트, 그리고 빛을 활용해 ‘테르메 발스(Therme Vals)’를 완성했다. 알프스의 자연경관, 천장과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 물의 온도와 소리 등을 섬세하게 계산해 설계했다. 스위스 작은 마을에 세운 나뭇잎 모양의 ‘성 베네딕트 교회(Saint Benedict Chapel)’와 독일 바렌도르프 들판에 있는 클라우스 형제 예배당(Bruder Klaus Field Chapel)도 감탄을 넘어선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클라우스 형제 예배당은 천장의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이 내려오는데 내부를 지지하던 나무 거푸집을 3주 동안 태워 만든 검은 벽과 대비되어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킨다. 그 어떤 화려한 장식 없이 놀랍도록 아름답다. “아무리 고심해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으면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한다.”라고 건축이 ‘아름다운 형태’를 간직해야 함을 춤토르는 강조한다. 그는 성상이나 정물에서 아름다운 형태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평범한 일상의 도구들, 하나의 문학작품, 한 곡의 음악에서도 아름다운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라고 이 책을 맺는다. 당신은 어떤 분위기를 사랑하는가? 그곳에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거기에 머무는 동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게 되리라. 김정경 시인은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검은 줄'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골목의 날씨>가 있다. 자칭 ‘산책중독자’. 오래된 골목을 유람하며 채집한 이야기로 시도 쓰고, 산문도 쓰며 살고 있다. 현재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