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근혜 작가, 최기우 ‘쿵푸 아니고 똥푸’
어린이희곡 <쿵푸 아니고 똥푸>는 ‘기똥차게’ 재미있다. 원고지 150장 정도의 분량이지만, 순식간에 읽힌다. 그러나 희곡은 낯선 장르이고, 연극 대본이라는 특성 때문에 ‘읽는 재미’를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최기우 극작가는 이런 인식을 깨기 위해 자신의 희곡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어린이의,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만을 생각한 희곡으로 폭을 넓혔다. 동명의 동화를 각색한 어린이희곡 <쿵푸 아니고 똥푸>(문학동네·2023)에는 자신이 처한 난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씩씩한 아이로 성장하는 두 편의 희곡이 있다. 얼굴이 까맣다고 놀림 받는 탄이가 화장실에서 만난 똥푸맨에게 똥은 더러운 게 아니라 위대하다는 교훈을 얻는 ‘쿵푸 아니고 똥푸’와 뜻하지 않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게 된 생쥐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다룬 ‘라면 한 줄’이다. 동화와 희곡의 큰 줄거리는 같지만, 희곡의 느낌은 분명히 다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흥 나는 대사와 인물의 행동이 눈에 선한 지문, 대사와 지문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운율이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넣은 노랫말이 한 예다. 생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 가는 장면에서 ‘쪼르르, 쪼르르, 쪼르르’, ‘후르륵 라면집 지나 후후짭짭 후후쩝쩝’, ‘고슬고슬 떡집 지나 찰떡찰떡 쑥떡쑥떡’, ‘빵빵한 빵집 지나 앙금앙금 엉금엉금’과 같이 노랫말 같으면서도 시 같은 대사는 희곡의 재미를 몰랐던 이들의 오감을 번뜩이게 한다. 소리 내 읽다 보면 ‘내 맘대로 작곡가’가 되고, 가사 일부를 바꿔 ‘내 멋대로 작사가’가 될 수 있어 더 즐겁다. 모든 인물이 중요한 인물로 바뀐 것을 확인하는 것도 특별한 재미다. 동화는 탄이와 똥푸맨이 이야기를 이끌지만, 희곡은 이야기를 더 넣어 작은 역할이었던 할머니·엄마·선생님·친구들 모두 자신만의 갈등구조가 있고, 그것을 해결하게끔 했다. 탄이를 놀리던 친구들은 서로를 이해하며 자신의 말과 행동을 반성하게 됐으며, 아빠 병간호만 하던 탄이 엄마는 밝은 성격을, 할머니는 며느리의 마음을 살필 줄 알게 하며 인물의 개성을 또렷하게 했다. 무대에서는 작은 역할이 없고, 모두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또한, 화장실 장면에서 탄이의 복장이나 물건 활용 등 작고 사소한 부분까지 작품 속 모든 말과 행동에 분명한 이유를 넣었다. 등장인물의 등·퇴장에 따른 이야기 구조의 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가게명, 음식명, 사건, 표정, 상황, 감정 등 모두 것을 구체화했으며, 독자가 쉽게 바꿔서 상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희곡이 ‘독자와 함께 쓰는 혹은 관객과 함께 만드는 진행형 문학’인 것을 증명한 예다. “배우처럼 읽고, 연출이나 무대 스태프처럼 생각하세요. 노랫말이 나오면 흥얼거리면서 빠르게 느리게 소리 내 읽어보세요. 자연스레 가락이 생깁니다. 춤이 나오면 슬쩍 엉덩이와 어깨를 들썩거리세요. 독자가 배우가 되고, 연출이 되고, 가수가 되고, 작곡가가 되고, 춤꾼이 되는 놀라운 변신을 경험하실 겁니다.” 최기우 극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당부의 말에 희곡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 모두 담겨 있다. 이제 기똥찬 희곡의 세계로 떠날 준비를 할 때다. 김근혜 작가는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동화 <다짜고짜 맹탐정>과 <봉주르 요리 교실 실종 사건>, <유령이 된 소년>, <나는 나야!>, <제롬랜드의 비밀> 등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