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행복의 기준
계묘(癸卯)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하느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넘치기를 바라며 또한 소원성취를 기원한다. 누구나 새해가 되면 새로운 소원을 갖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또 새로운 각오와 목표를 세우며 이를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지난해에 이루지 못한 것들과 아쉬움으로 남은 것들을 성취하려는 마음을 다짐하며, 다시 희망을 걸어 본다. 이렇게 새해를 맞아 비는 소원과 꿈들은 거의 '복 많이 받고, 건강 장수하고, 돈 많이 벌기' 등 막연한 것들로 채워진다. 더 구체적인 것으로는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관리와 다이어트를 통한 체중조절과 향후 질병 없이 활기찬 생활을 소망하기도 한다. 또한 읽지 못했던 독서로 부족한 지혜와 지식을 보충하고, 부단한 노력과 교양을 통해서 자기계발을 다짐하든지, 또는 여러곳의 여행, 시간과 약속을 잘 지키기, 담배 끊기, 술자리 덜 가기. 심지어 간식 안 먹기 등 크고, 작은 각오들을 소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개 그동안 실패한 확률이 높은 것들이어서 다시 다짐하는 각오들이다. 그런데 필자는 좀 색 다른 소원을 빌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소망이다. 페르시아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오마르 하이얌>은 '일을 즐기자. 그것만이 영원한 생명, 인생의 유일한 보람이다'고 했다. 모두가 생존을 위해, 일에 묻혀 살지만 일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다. 미국 경제학자의 통계를 보면 1년 8,670시간 중에 일을 하는 시간은 고작 2,000시간 정도로 전체의 20~30%에 불과하며 나머지 70%는 먹고 자고 놀고 육아하는 시간이라 했다. 일의 가치는 이 정도뿐인데 고작 30%에 불과한 일이 언제부턴가 인생의 행복을 재는 척도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인생을 즐기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다. 직장 상사의 눈치 보느라 지치고, 원하는 직위에 오르지 못해 실망하고, 또래보다 수입이 적어 위축되고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은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불과한 만큼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생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반려자고 가족이고 허물없는 친구들이다. 남들처럼 밥 먹을 수 있고 따뜻한 침실에서 잘 수 있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고 뭐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반려자와 친구가 있으면 인생은 그걸로 충분하다. 이런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면 30%의 일에 휘둘리거나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인지 곧 알 것이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은 혼자선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에 모여서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사회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간다. 이 사회에는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 규칙을 잘 지키고 해야 할 일에 즐겁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다. 만약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100%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수밖에 없다. 물질이 풍요롭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산다. 행복은 건강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몸도 마음도 편안한 삶을 사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에서 만들어진 행복은 결국 영원한 행복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의 기준은 한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한 삶이란 분수에 맞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행복은 각자의 눈높이에 맞는 기준에서 비롯된다. 안도는 국제펜클럽 전북위원장, 전북문인협회장, 전북문학관 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시, 수필을 강의하면서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