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음(賣淫)의 역사는 고대인도에서 무희(舞姬)가 사원 참배자에게 여성을 대표하여 몸을 맡기고 보수를 받는 풍습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같은 풍습은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 등에서도 있었고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매음행위가 한층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중세의 억압된 성(性)이 해방되면서 매음은 더욱 성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기녀(妓女)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 들어서는 세종때 ‘감동’(甘同), 성종때 ‘어우동’과 같은 기생이 당시 내노라하는 벼슬아치들을 상대로 매춘(賣春)을 일삼다가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일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관기(官妓)를 중심으로한 매음행위가 일반화 됐던것 같다.
그러다 한말에 이르러 매춘 자체를 업으로 삼는 탑앙모리(搭仰謀利)가 생겨나고 해방후 미군부대와 역주변에 홍등가가 들어서더니 요즘에는 장소불문하고 시도때도없이 매춘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노인들을 상대로하는 속칭 ‘음료수 아줌마’에서 부터 원조교제라는 위선적 용어로 포장된 ‘소녀 매춘’까지 실로 입에 담기 부끄러운 매춘행위가 스스럼없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지난 61년에 ‘윤락행위 방지법’을 제정한후 매춘을 법으로 엄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매춘을 완전히 근절시킬 묘책은 없고 법과 현실의 괴리속에 백만이 넘는 이름없는 여인들이 인권사각지대에서 ‘노예 매춘’이라는 형벌(?)을 당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대책이 대책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오늘도 그들은 철창에 갇혀 바깥세상을 향해 “나는 누구냐”고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둘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한다. 법에따라 단속을 강화해 매춘을 완전히 없애든지, 아니면 현실적으로 매춘의 존재를 인정하고 제대로 관리를 해주던지, 근래 독일 베를린 행정법원이 “범죄행위와 관련되지 않은 매매춘은 더이상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로 볼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 매춘의 합법화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어찌 남의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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