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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제협력단 군산 황윤호씨

 



밤깊은 시간,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뒤숭숭한 꿈때문에 새벽녘에도 몇번씩 깨어나 뜬눈으로 밤을 샌 것이나 다름 없었다.

 

평소 보다 30여분 늦게 침대를 빠져나와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로 갈아타 사무실이 있는 세계무역센터 건물 지하철역에 도착한 시각은 8시40분. 평소 같으면 이미 78층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을 시각이다.

 

바쁜 걸음으로 지하로비를 지난 엘리베이터를 타려할 때였다. 갑자기 사람들이 계단을 통해 비명을 지르며 밀물처럼 밀려오면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美테러 대참사의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군산시청 사무관 황호윤씨(37·한국지방자치국제화협력단). 상상도 할수 없었던 대형참사의 현장에 있었던 그는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신이 살아간 것이 꼭 기적만 같다고 털어놓았다.

 

“숙소가 있는 뉴저지에서 1시간 가량 걸리는 출근길이지만 항상 8시30분 이전에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전날밤 악몽때문에 제대로 잠을 못이뤄 늦잠을 잔 것이 목숨을 건지게한 것 같습니다.”

 

현지시각으로 12일 밤 11시가 넘은 시각. 전화로 들려온 황씨의 목소리는 또렷하지만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사람들과 함께 건물에 빠져나왔을 때 거리는 하늘에서는 깨진 유리창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거리퍼레이드를 위해 종이조각을 하늘에 뿌리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먼지 사이로 자신의 사무실 바로 위층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보고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터졌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같은 사무실의 소장님 등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전화를 찾아 해맸지만 공중전화 박스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때였다. 다시 심한 소리와 함께 반대쪽 쌍동이 건물에 불길이 치솟았다. 불과 2백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바라본 광경은 한편의 영화였다.

 

검은 연기사이로 80층이 넘는 위치에서 사람들이 몸을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폭발음이 터지자 주변의 건물안으로 피하느라 아수라장이 됐다. 겨우 순서를 기다린 전화는 불통이었다.

 

건물안으로 몸을 피했지만 경찰과 소방서직원들은 사고가 난 건물이 위험하다며 최소한 다섯블록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라며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1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전화를 찾아 사무실 직원들의 생존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고, 한국에서 걱정할 가족들에게도 목소리를 들려주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악몽때문에 건진 목숨이지만 참사현장의 모습이 아직도 머리속에 남아 오늘밤도 악몽에 시달리진 않을지 걱정이 된다며 황씨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멀고먼 고향에 땅에서 걱정해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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