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에서 신석정 선생에게 압도당한 느낌이었다. 키가 크고 날씬한 몸매, 그리고 코가 유난히 크고 얼굴 윤곽이 마치 희랍 조각과 같았다. 깎아 만든 것처럼 강한 인상을 내게 심어 주었다.'
석정시인이 전주 태백신문사 편집 고문으로 있을 때, 석정을 찾아가 준비한 시 한 편을 얼른 내밀었다는 이병훈 시인. 그가 풀어놓은 석정의 첫인상은 '매사 깔끔하시고 속됨이 없는 난초와 같은 기품을 남기고 가신 분'이다.
석정에 의해 문단에 데뷔한 고 황길현 시인도 '가람 이병기 선생은 신석정 선생을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서정시인이라고 극구 찬양했다'고 전한다.
'어느 수업 중, 책상들 사이로 걸으며 책을 읽어주시던 선생님이 걸상 옆에 약간 나온 내 발을 지긋이 밟고 한참 놓지 않으셨다. 그분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전주고 재학 시절, 작문 선생과 제자로 만나 특별한 인연을 이어간 강일부씨는 석정 선생과의 추억들을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석정의 인간적인 면모를 특히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석정시인이 세상을 뜬지 30주년. 석정문학회(회장 허소라)가 '석정문학 2003년 겨울 제16집'을 펴냈다. 학술적 연구성과와 순수문예의 측면을 잘 아우른 결실이다. 기획특집으로 엮은 '석정시인의 회억'은 청소년과 어린이를 사랑하고, 식물을 잘 알고,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을 추억하는 글들.
'이따금씩 누구누구의 아들이라고 소개받는 것이 부끄럽기만 하온데'라며 써내려간 석정의 3남 신광연씨의 절절한 편지가 가슴 한 켠을 아리게도 하지만, 학술논문을 통해서는 접할 수 없었던 석정의 인품과 일화들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귀한 지면이다.
석정의 최초 발표시 1924년 조선일보 '기우는 해'를 비롯해 1947년 신천지 '움직이는 네 肖像畵', 1961년 민족일보 '다가온 春窮'등 석정 작품이 실린 지면을 그대로 옮긴 '신석정 미수록(시집) 시 원전(原典) 다시보기'는 특히 눈길을 모은다.
'신석정 연구'도 기획특집으로 함께 마련됐다. 강희안씨는 시집 '永河'를 중심으로 한 '상실감과 자아 확립의 공간 체험'이라는 글에서 "석정의 초기 시는 윤리적 실존 근거로서의 역사적 현실을 거부했거나 지향적 모티브를 상실했기 때문일 세계와 대결을 회피하면서 관념적으로 내화된 경향을 띤다”고 말했다. 또한 "중기 시에 축조된 공간이 어떻게 이상과 현실을 통합하고 존재론적 지향을 보여주는가 하는 점은 석정 시의 내재적 의미 체계와 상징의 체계를 동시에 밝히는 일”이라며 "중기 시에 구체적인 현실과 인간이 등장하는 것은 실존의 공간에서 방황하던 무력한 자아가 대사회적 관점으로 열려 가는 의식의 궤적이며 시인으로서 새로운 자각에 이른 결과”라고 덧붙였다.
군산대 허소라 명예교수의 '신석정 시의 文體論的 고찰', 서울대 오세영 교수의 '신석정 -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원광대 오하근 교수의 '植民地와 理想鄕과의 距離', 오창렬씨의 '신석정과 「촛불」'등의 논문은 석정의 작품세계 분석을 통한 깊이있는 통찰과 시세계의 밀도있는 연구 성과를 보여준다.
허소라 회장은 "석정 추모30주기인 올해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로 선생의 문학혼을 알릴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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