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목을 따오라'는 북파공작임무가 주어졌지만, 결국 나라로부터 버림받게 되는 684부대의 실화를 다룬 '실미도(감독 강우석)'가 개봉 전부터 예매 열풍으로 심상치 않더니, 15일째인 지난 7일 전국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 '실미도' 세트장을 철거한 해당 공무원은 문책성 인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촬영현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다. 이 영화는 단순한 흥행 성공을 넘어 영화 소재를 사회적 이슈로 공론화시켰다.
전주 극장가 역시 마찬가지. 지난 주말 전주 시내 한 영화관은 실미도를 보러온 관객들로 몸살을 앓았다. 이 극장에서만 실미도 관람 관객은 대략 5천여명, '실미도 신드롬' '실미도 폐인'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영화계 마이더스 손'이라 불리는 강우석 감독, 연기 잘 하는 국민배우 안성기·설경구·허준호, '31명의 주연'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개성이 살아있는 조연들의 빛나는 연기 등 영화 '실미도'의 성공요인은 많다.
그러나 '실미도'의 성공은 한국영화의 흐름과 그 기류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때는 최루성 멜로영화가 또 한때는 엽기적인 웃음이 스크린에서 넘쳐나던 때가 있었다. 최근 한국영화는 '조폭+코미디'에서 '과거+코미디'로 그 화두가 옮겨졌다. 견고해서 영원히 깨뜨리지 못할 것만 같았던 헐리우드 영화를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가 깨뜨리더니 한동안 그와 비슷한 영화들이 주를 이뤘고, 뒷골목 깡패들이 영화 주인공으로 전면 등장해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영화 '친구'를 시작으로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킬러들의 수다' 등 흔히 말하는 '조폭영화'가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국영화는 '과거'라는 테마로 자연스레 흘러왔다. '실미도'가 잊혀진 역사를 오늘에 다시 되살렸다면, 18세기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한 '스크린'과 곧 개봉할 '태극기를 휘날리며'는 각각 조선시대와 한국전쟁이 배경이다. '거시기'를 유행시킨 '황산벌'은 국사책 속 황산벌 전투에 작가의 유쾌한 상상력이 더해진 작품이다.
'과거'와 '역사'에서 모티브를 따오거나 영화의 배경으로 삼는 등 흥행과 거리가 멀 것 같았던 진지한 소재를 주목해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영화들이 많아졌다. 양념처럼 몇 컷의 재밌는 상황이나 대사를 뿌리고, 조연들을 덧붙여 자칫 심각해지거나 지루해지는 부담감을 덜고 관객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영화 속에 빠져들게 한다.
숨기는 것보다 오픈하는 것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들은 잊혀지거나 혹은 은폐된 우리 역사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됐다. 영상세대들은 딱딱한 교과서식 역사가 아닌 생생한 역사교육으로 영화를 체득하게 된다. 또한 과거에 대한 향수를 품고있는 중장년층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들이기도 훨씬 수월해졌다.
한국영화의 기반을 화려하게 닦아놓은 '쉬리'를 필두로 'J.S.A.' '실미도'등 밀실에서 이뤄지던 이야기들이 광장으로 거침없이 나오게 된 것도 한국영화의 당당한 도전이다.
이제 '과거'라는 소재도 '실미도'에서 절정에 이른 것 같다. 한국영화계는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라는 바람이 또다시 불어오기 시작했다.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처럼 10∼20대의 엽기발랄한 이야기 '내사랑 싸가지' '그놈은 멋있었다'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가볍지만 감각적이고 황당하지만 재밌는 이야기들이 오랜만에 진지해진 한국영화판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려고 준비중이다.
우석대 연극영화과 남완석 교수는 "한국영화의 스토리와 기술의 수준이 높아지고, 비슷한 재미와 감동이라면 헐리우드 영화보다 우리 이야기를 보자는 관객들의 인식전환이 한국영화의 인기에 동시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급성장한 한국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남교수는 "한국영화의 인기는 고무적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여전하다”며 "다양한 장르가 균형적으로 발전해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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