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사람의 손을 거치며 생생하게 소리를 내고 숨을 쉰다. 갑신년에도 전북 문화의 꽃망울을 틔워내려는 젊은이들의 움직임이 활기차다. 올해 전북의 문화계에 변화를 이끌고 결실을 맺을 사람들. 전북 문화의 희망이 떠오른다.
'문 밖을 나서기가 더 두려워지면/산골 뜨뜻한 절 방에 들어앉아/해가 꼭 저 누울 자리만큼 길어날 때까지/동지 지나 한 열흘 더 화톳불이나 일구어 놓자'(김형미의 시 '동지'부분)
"요즘 시 많이 썼어요” 목소리가 밝고 힘차다. "견디기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그 아픔에 맞서는 일이 시를 쓰는 일밖에 없어 일기를 쓰듯 시를 쓴다”던 그가 난데없이 다작(多作)을 자랑하는 모습이 생뚱맞다. 지난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시·'후리지아를 든 남자')를 통해 세상을 연 김형미 시인(28). 한동안 우울한 일을 겪었던 그가 유독 밝아진 이유는 지난해 가을 고향인 부안으로 내려오면서부터다. 회귀. 출판사·문학잡지사 등에서 필력을 다졌던 짧은 서울생활을 털어낸 것은 '시가 잘 써지지 않아서'였고, '시 쓰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였다.
그의 첫 인상은 제각각이지만 시에 대한 평가는 한결같다. "시를 참 잘 쓴다”는 것. 시인입성 4년. 올해 그의 첫 시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껏 쓴 시편들도 시집 몇 권 분량은 넘는다. 그러나 시인은 "부족한 게 많아서 욕심이 없다”며 "몇 년이 걸리지 모르겠지만, 유영금·서정춘 시인처럼 마음이 넓고 세상을 이해할 줄 아는, 쓰고 싶은 글을 고집스럽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시집을 내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2004년 첫 시집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신인다운 상상력과 치열하고도 넉살좋은 언어'와 '적절한 어휘와 교직된 나무랄 데 없는 심상의 완결미'가 전문가들이 뽑는 시인의 시평. 등단을 하던 그 해부터 시인은 시를 세상에 선보이는 일에 부지런을 떨었다. 진주신문사에서 실시한 가을문예공모를 통해 또 한번 이름을 알렸고, 지난해 월간 '문학사상'에서도 신인상을 수상했다. 약간 급한 경사의 계단 오르기.
시인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를 썼다”며 당당하지만 원광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고, 원광문학회에 들어가기 전까지 교과서에 나오는 시인들 외에는 알지 못했다. 새내기때부터 선배들의 주목받았고, 각 대학에서 주최한 문학상도 받으며 시의 맛을 알아갔다.
그의 대학후배이자 룸메이트였던 김정경씨(혼불기념사업회 간사)는 "시를 쓰기 시작하면 아침에 나가면서 봤던 자세와 저녁에 돌아와 보게 되는 자세가 똑같다”며 그를 '지독하고 질긴 사람'이라고 말한다. 물을 마시거나 펜을 움직이는 것을 제외하곤 미동. 그의 글쓰기 습관이다. 시인은 자신을 "기가 세다”고 표현했다. 서울에 있을 땐 자칭 길거리 도인이라 부르는 이들을 하루에 대여섯명씩 매달리기도 했단다.
그는 자신의 문학의 동력을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신적인 허기와 고독에 있다”고 말한다. 당당히 허기와 고독을 밝히는 시인. 그래서 그는 언제나 생동감 있고 새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육체부터 아파 오기 시작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서울에서 몇 번 자리를 옮기며 겪은 사무직도 예외없이 참을 수 없는 권태와 나태에 빠트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금 부안의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일은 매일매일 새로운 직업을 대하는 것처럼 싱싱하단다. 지난해에는 전북작가회의나 부안문인협회의 기관지에 시편을 발표하며 선배 문인들에게 전라도 땅에 재입성했음을 알리기도 했다. 그리고 귀한 글벗들도 생겼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통해 목소리를 들어야 하루가 안도되는, 그렇게 살아가는 문우들이 꼭 다섯 명 있어요. 모두 다 가슴에 한 가지씩의 아픔과 고통이 들어 있어 단 한순간만 방심해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인물들이죠”
그의 올해 계획은 현재 모습을 유지하는 것. 시인은 당분간 이들과 서로 부둥켜안고 의지하며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이들을 만나면서 광범위한 소재와 치밀한 구성, 중성적인 언어,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 붓게 하는 시의 끝자락 등 그의 매력도 더 진한 울림을 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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