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은 대통령이나 장군이 되겠다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질 정도로 '전북의 1970년대 산'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영상이 시대의 화두가 된 변화의 한복판에서 '영화감독의 꿈'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노윤씨(30·자연영화사 제작팀). '10만원'(단편영화 1편을 제작하는데 그가 쏟는 최소경비)을 마련하는데도 빠듯한 빈털터리지만, 호주머니마다 영화에 대한 꿈을 백설기 꽃처럼 펼쳐내는 전주의 돋보이는 영상일꾼이다.
'베스트극장''주말의 명화''쿵푸영화''장만옥' 등 시대의 코드와 함께 해 온 노씨는 지역 영상문화의 흐름에 직접 참여하며 감독의 꿈을 키워왔다. 연극·영화배우에 한정됐던 '할리우드 키드'들의 바람이 카메라감독과 편집전문가·음향전문가·연출자로 확대된 것처럼 그의 시선도 넓어졌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매년 수십 편의 영상물을 생산해내는 '영상 2세대'의 대표주자였다.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매년 열리는 10여개의 크고 작은 영화·영상제에도 공모자로 혹은 스탭으로 참여하는 등 늘 분주했던 그의 활동은 직접 제작에 뛰어든 지금도 여전하다. 비디오엑티비스트 등 일반인들을 위해 마련된 영상강좌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말 전주를 텃밭으로 장편영화 제작을 내세우고 출범한 ㈜자연영화사 제작팀에 합류, 차기작품 연출자로 내정됐다.
한양대에서 주최한 아비드(영상편집) 전문가과정을 이수했던 2001년 한 해에만도 뮤직비디오 '고백'(연출), 극영화 '말하는 키보드'(시나리오·프로듀서) '거리'(연출) '배달부'(촬영) 등과 인연을 맺을 만큼 활발한 활동을 했던 그는 우석대 신방과 출신.
얼굴 맞대고 지내는 친구 대부분이 영화제작에 별관심이 없었지만 그는 도서관에서 혼자 시나리오와 연출을 공부했다. 친구들의 짐작처럼 '대단한 취업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책상에 앉아 시나리오를 쓰고, 스토리보드를 그렸던 것. 그러나 그는 "현장에 직접 참여해 관찰하거나 경험 없이 책으로만 공부했던 그 시절에 반성할 것이 많다”고 고백한다. 그 해 제작한 1인 극영화 '12시'(8분·2000)가 그의 첫 작품. 밤이면 수위아저씨들의 눈을 피해 영상동아리에 몰래 잠입(?), 편집기계를 써야 했던 때다. 고생했던 만큼 기쁨도 컸다.
"취업준비생의 고뇌와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죽음을 그렸습니다. 그때는 저나 친구들에게 가장 큰 고민이었거든요”
일곱컷의 짧은 단편이지만, 그 컷을 거꾸로 돌리면 자살이 아니라 죽음을 선택하려던 이가 삶에 대해 더 진지한 고민을 하는 형태로 바뀌어진다고 특별한 의미를 소개했다.
지난해 그는 꽤 다양한 일에 옵저버로 참여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물을 내지 못했다. 그는 이 고민많았던 시간을 '늦게나마 찾아와 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표현했다.
"지금까지 해 온 작업에 회의가 들었어요. 작가적 경향에서 보면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짧았다고 생각합니다. 극의 흐름을 관통해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컷을 연결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 아니었는지, 하는 반성이죠”
늘 탄탄한 시나리오를 강조하는 그는 '영화에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하는가'하는 감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고민이 유난히 크다. 그가 영화라는 악몽에서 벗어나기 바라는 어머니나 형의 바람처럼(경제적 이유로)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다.
올해 그는 은행털이범을 소재로 한 단편 'Give me the money' 연작과 내년 크랭크인할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게 1차 목표다. 가장 큰 계획은 필름을 이용해 단편 독립영화를 만드는 일. 자신의 이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허황한 꿈이라고 하겠지만 헐리웃을 전주에 옮기고 싶어요. 전주는 제 고향이고, 앞으로도 제가 살아가야 할 곳이니까요”
대규모의 영상사업만을 계획할 뿐 정작 사람 키우는 일에는 인색한 전주지만, 그래도 그는 전주를 '컷' 하지 않겠단다. 주위에 있던 영상인프라들이 자꾸 떠나고 있지만, 그에게 전주는 영화에 대한 꿈을 줬고, 희망을 꿈틀거리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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