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밖이나 사찰, 성당을 넘어서 사회문제나 지역사회문제에 대해 종교인들이 앞장 서는 일은 쉽지 않다. 스스로의 결정이 미칠 여파가 신도나 신자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적잖은 상징성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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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대 독재와 맞서 싸웠던 때나 새만금, 방폐장 문제로 지역사회가 찬반의 분분한 의견 속에 혼돈스러운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다만, 목표나 생각하는 지향점이 같았던 그때와 달리 종교계 내에서도 다소의 입장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도내 기독교 내에서 새만금 찬성에 의지를 모으고, 지속적으로 찬성운동을 해온 백남운 목사(57, 전주 효자동교회). 그는 전북기독교 새만금완공 추진위원회 상임총무일을 맡아오고 있다.
그 역시 혼돈의 상황에서 종교인으로서 스스로의 오랜 갈등과 고민끝에 찬성의 입장을 정리하고 새만금 완공을 위한 일에 몸을 던져 왔다.
최근 법원의 새만금 방조제 공사에 대해 1심 법원이 집행정지 결정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는 결정에 따라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재개된 지금 그를 찾았다. 물론 다음달 있을 본안 소송에 따라 공사지속 여부가 판가름날 상황이지만 일단은 안도하는 눈치였다.
공사여부를 놓고 논란이 됐던 3년전 께. 지역사람으로서 '과연 새만금공사가 무엇이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고 싶어 시작했던 모임이 지금의 추진위의 모태가 됐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백목사의 효자동교회로 '새만금 공부'(?)를 위해 모여든 목사들만도 40여명. 이른 아침 공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환경단체측의 주장내용 등을 토론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지역발전을 위해 공사가 계속돼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였지만 새만금 공사의 당위성에 대한 판단이 서기 시작했다. 이후부터는 청와대, 국회, 국무총리, 관련 정부기관 등을 하루가 멀다하게 찾아 다녔다.
물론 교계 내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20년동안 활동해온 인권선교협의회나 전북사회선교협의회에서도 '백목사 개인적인 의견'으로 활동해줄 것으로 권하기도 했다.
80년대 지역 민주화운동의 종교계 중심이었던 인권선교협의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그였기에 '새만금 찬성'에 나선 그의 모습에 후배들이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 나름대로의 확신으로 찬성운동에 앞장 섰다. 이 때문에 별도의 단체, 지금의 추진위를 구성하게 된 것. 물론 백목사 외에도 원로인 신삼석목사(신한교회)를 비롯해 김현식(기장전북노회 공로목사), 최덕기(예장전주노회 사회선교 담당목사), 염용택(완산교회 원로목사)등이 함께 한 것도 큰힘이 됐다.
백목사는 "물론 환경운동을 하거나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후배들과 한때는 의견 차이로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며 존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새만금이 친환경적으로 개발될 수 있도록 한 데에는 환경단체의 역할이 컸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찬반의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는만큼 서로 만나 입장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며 화해와 서로에 대한 믿음이 곧 종교인의 자세가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백목사는 전북대와 장로회 신학대학을 나왔으며 민주수호 전북지역 청년대표, 전북인권선교협의회(현 회장), 목회자정의평화실현협의회 전국의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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